2012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항상 저희집을 위해 애써주시는 장모님을 위해 뭔가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뭐 거창한 거 만들 실력은 안되고, 그렇다고 완성도 떨어지는 걸 선물로 드릴수도 없고 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뭘 만들어 드릴까... 하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muni-b.com에서 자작나무합판으로 만든 접이식 테이블을 파는 걸 봤습니다. 사진으로 볼 때 아주 예쁘고, 저거라면 쉽게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자작나무(birch)는 추운곳에서 잘 자랍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자작나무는 러시아와 핀란드에서 수입됩니다. 자작나무는 수피가 하얀 것이 특징이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수피가 하얀 나무는 십중팔구 버즘나무(플라타너스), 은사시나무, 자작나무 중 하나입니다.
자작나무의 이 흰 껍질은 얇게 잘 벗겨져서 옛날에는 종이의 대용으로 많이 썼고, 약재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불이 잘 붙어서 이를 화촉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많이 듣는 얘기죠? 단단한 나무하면 흔히 박달나무를 연상하는데 이 박달나무가 자작나무와 같은 속입니다. 그래서 자작나무도 아주 단단하고 결이 고와 가구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작나무 집성판재도 수입되지만, 거의 대부분 합판의 형태로 수입됩니다. 흔히 합판이라고 하면 공사장에서 거푸집 만들때 쓰는 저품질의 것을 연상하기 쉽지만, 러시아나 핀란드에서 수입되는 자작나무 합판은 고급 내장재용 합판입니다. 합판을 만들 때 사용하는 본드도 좋은 걸 써서 E0급 혹은 E1급만 수입이 됩니다. 합판은 공학적 측면에서 집성판재에 비해 잇점이 많습니다. 강도가 더 높고, 수축/팽창/휨 등의 변형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자작나무 특유의 아름다운 상판의 나뭇결과 절단면의 깔끔한 스트라이프 무늬가 매력적입니다.
자작나무 합판은 결방향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CNC가공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며, 얇은 두께의 제품이 있기 때문에 밴딩하여(구부려) 집성하는 방법으로 곡선으로도 만들 수 있어 다양하게 활용이 됩니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알파벳이라든가, 자작나무합판을 밴딩하여 만든 의자 등을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작합판 테이블 만드는데 왜 이렇게 서론이 기냐면... 과정을 보여줄 만한게 없을 정도로 너무 쉽게 만들 수 있는데다가 사진도 별로 남아 있는게 없네요. ㅡ,,ㅡ 본격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자작합판 테이블의 크기를 정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파는 여러 접이식 테이블의 크기를 참조해본 결과 600mm x 600mm 정도가 적당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두께를 정해야 하는데... 보통 테이블은 18t를 많이 사용하는데 자작합판은 강도도 좋은데다가 무겁기 때문에 굳이 18t로 해서 마눌님의 불평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15t로 정했습니다.
제가 나무 사는 곳에다가 600mm x 600mm x 15t 로 주문하고 네 모서리를 라운딩 가공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라운딩 가공은 네 모서리를 둥그렇게 잘라내는 가공을 말합니다. 보통 직쏘나 라우터로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런 시끄러운 공구는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곳에다 가공비를 주고 부탁했습니다. 두개를 주문해서 하나는 저희가 쓰고 하나는 장모님께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자작합판 테이블에 붙일 다리는 접을 수 있는 아연도금된 다리로 구매했습니다. 다리는 피스로 간단하게 밑바닥에 고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작합판은 앞/뒤가 있다는 점입니다. 잘 보시면 한면은 깨끗하게 가공되어 있고, 다른 면은 패치(검정색 흠집)도 많고 면도 거친걸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한 면을 당연히 상판으로 써야겠죠.
며칠 뒤에 자작합판이 배송되어 왔는데 불행하게도 하나의 합판에는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있네요. 나무는 배송하면서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면 직접 가지러 가든지 해야지... 쩝. 다행히 라운딩 가공은 깔끔하게 잘 되어 왔습니다. 가벼운 사포질만 해도 바로 마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합판입니다.
자작나무의 하얀색 상판과 은은한 나뭇결이 아름답기 때문에 별도의 도색은 하지 않고 그냥 바니쉬(Varnish)만 바르기로 합니다. 바니쉬는 목재의 표면에 방수코팅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있는 상판에는 반드시 바니쉬를 칠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치국물이라도 흘리면 재앙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니쉬를 따로 주문을 안했네요. 그래서 동네 페인트가게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집 바로 앞에 삼화페인트 가게가 있더군요. 목재에 바를 바니쉬를 달라고 하니 광도를 물어봅니다. 유광, 반광, 무광이 있다고 합니다. 뭐든 중간이 좋으니 반광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홈스타 크리어라는 제품입니다. 용량은 500ml 구요.
상대적인 품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많이들 사용하는 본덱스 퀵드라잉업 바니쉬를 다음에 사용해보고 비교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 가격은 본덱스 제품의 절반입니다. 많이 착하죠. 근데 이 제품을 다 써야 본덱스거를 사보는데... 제가 마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500ml나 되어서 언제 다 쓸지 모르겠네요.
(홈스타 크리어를 바른지 1년이 지났는데, 좀 실망이네요. 좀 끈적대는 느낌이고 뭐가 묻으면 잘 닦아지지 않고 들러 붙습니다. 수입산 비싼 폴리우레탄은 이렇지 않은데 품질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홈스타 클리어 이 제품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요)
바니쉬는 너무 추울때 바르면 잘 퍼지지 않고 붓자국이 남는다고 합니다.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는 점심 즈음 마눌님이 직접 바니쉬를 칠해 주시네요. 붓으로 해도 되고 스펀지로 해도 되는데... 단 얇게 바르고 충분히 말리고 가벼운 사포질 후 또 얇게 바르는 과정을 2~3회 반복해야 합니다. 얼마나 말려야 하는지는 바니쉬의 포장에 재도장 간격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니 그것대로 하면 됩니다. 이 제품의 경우 3시간 정도입니다.
얇게 바른다는게 어떤 느낌이냐면 바른다는 느낌보다는 나무에 뭍힌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바니쉬 도장 후 5~10분 정도 있다가 아래에 맺혀있는게 없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바니쉬 맺힌게 굳으니 딱딱해서 잘 제거되지 않네요. 굳기 전에 살짝 닦아내 주어야 합니다.
자작합판 테이블 뒷면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저 사진 정도의 느낌으로 다리를 피스로 고정하면 됩니다. 이 테이블은 에이프런이 없어 한손으로 들기에 무겁고 미끄럽습니다. 자칫 손에서 놓쳐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다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원목 손잡이를 아랫쪽에다 달았습니다. 단단한 고정을 위해 목공용 본드를 사용할 있도록 꼭 원목 손잡이로 하는게 좋습니다. 이 손잡이가 있으니 참 편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뚝딱 두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저희집에서 잘 쓰고 있고, 하나는 장모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렸습니다. 좋아하시는 건 물론이고, 손님들 올 때마다 사위가 만들었다고 자랑하신다네요. ㅋㅋ
테이블에 쓰인 다리는 높이가 230mm 입니다. 실제로 앉아 보면 무릎이 살짝 닿아 조금만 더 높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찾아보니 G시장에 280mm 짜리 다리도 판매를 하네요. 그런데 디자인이 별루라... 예쁜 디자인의 높은 다리가 나오면 교체할 생각입니다.
바니쉬로 사용했던 삼화페인트의 홈스타 크리어에 대한 절대적 평가를 해보자면, 칠을 할 때 불쾌한 냄새는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작업할 수 있었고, 적당한 점도라 잘 퍼지고 붓자국도 잘 없어지는 편인 것 같습니다. 비교적 빨리 마르는 편이고 방수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처가댁에 가서 자작합판 테이블을 보니 동그랗게 컵자국이 남아 있더라구요. 뜨거운 커피를 올려두었더니 생겼다고 하네요. 이건 삼화페인트 바니쉬만의 문제는 아니고, 바니쉬 자체가 열에 약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냄비나 컵은 반드시 받침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전통의 마감법인 옻칠의 경우 열에 아주 강합니다. 집에 하나씩은 있을 옻칠 된 교자상을 생각해보시면 알 겁니다. 옻칠은 제대로 하려면 정규코스를 밟아야 할 정도로 어렵고 번거롭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자작합판 로우 테이블을 소개드렸습니다. 기성 제품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직접 만들 수 있으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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