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은 크리스마스라 주위에서 기대들이 많았습니다. 장모님께는 자작나무 로우 테이블을 만들어 드렸고... 이제 아들내미를 위한 선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이템도 빈약하고 시간도 없고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전날 산타할아버지가 와서 줄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거든요. 그것도 12월 20일까지 보내라고 해서 더 마음이 급했습니다.
사실 아들내미가 요즘 알파벳에 꽂혀 있습니다. 거의 하루종일 알파벳 송을 부르고 스케치북에다 알파벳 쓰고, 저한테 오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나무로 알파벳을 만들어 달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알파벳 모양의 의자를 만들어 줄라고 했습니다. 근데 마눌님이 제 얘기를 듣고 하는 말이... "A 만들고 나면 B 만들어야 되고... 결국 Z까지 만든 다음에 소문자까지 다 만들어 달라고 할꺼야. 어디다 다 놓을껀데?" 맞는 말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아들내미 때문에 끝가지 가지 못할 거면 시작을 아예 않는것이 좋습니다.
알파벳 관련 다른 선물을 해줄게 없나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에 바우앤홈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CNC로 가공한 자작나무 합판 알파벳이었습니다. 6.5t 자작나무 합판을 썼고, 크기는 대략 가로 세로 30~40mm 정도 되는 아담한 크기입니다. A부터 Z까지 다 사줘도 별로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가격이구요.
이런 알파벳을 직접 만들려면 스크롤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합판류를 사용해야 합니다. 원목이나 집성목을 쓰게 되면 가는 부분에 결의 직각방향이 걸리면 쉽게 부러집니다. 그래서 결 방향에 구애받지 않는 합판이나 MDF를 써야 하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놀거라면 자작나무합판으로 만드는게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집에 스크롤쏘도 없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촉박해 그냥 바우엔홈에 주문했습니다.
선물의 알맹이는 이제 준비되었고... 이 알파벳들을 담을 뭔가가 필요한데 그냥 봉지에 담아 보낼 수도 없고 해서 간단하게 이 알파벳들을 담을 박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대략 설계했습니다. 목재는 삼나무 핑거조인트 집성 12t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삼나무는 무르고 약하지만 가볍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아이들이 쓰는 소품으로 딱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를 한 게 톱질에 자신이 좀 붙었다고 길이켜기만 요청했던 겁니다. 폭절단은 직접 하리라... 생각하구요.
무른 삼나무이니 톱질도 쉽겠거니 생각했는데... 왠걸 직각으로 절단한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고, 톱질이 끝나가는 즈음엔 반드시 뚝하고 끝부분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생기는 겁니다. 아래 사진에 보면 딱딱 맞아야 할 판재의 한쪽이 깎여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톱질 끝부분에서 나무 결이 부러졌고, 그 부분을 사포로 다듬다보니 저렇게 된 겁니다. 이때는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했는데 지금이라면 부러진 부분을 잘 찾아다가 본드로 붙여서 각을 살려놓을 겁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잘려나갈 부재를 받치지 않을 경우 거의 다 잘려나가서 간당간당할 즈음 톱질 하는 힘에 의해 나무결 부분이 뚝 부러지게 되는데 이때 남아있는 부재쪽의 결이 뜯겨져 나갈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이 현상을 막으려면 폭이 좁은 판재의 경우 각도톱대(Miter Box)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잘려나갈 부재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기 때문에 결대로 깨지질 않습니다. 각도톱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를 판재를 잘 클램핑한 상태에서 부재가 거의 잘려나갈 즈음 왼손으로 잘려나갈 부재를 잡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수평에 가깝게 살살 톱질을 마무리하는 겁니다. (오른손 잡이인 경우입니다)
박스를 만들 삼나무 판재를 다 절단하고 나서 결합을 할 차례입니다. 애초 계획은 6mm 목심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산 착오 때문에 첫번째 시도가 실패를 했습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더군요... 다행히 삼나무 판재를 여유있게 구매했기 때문에 다시 틀린 부분을 자른 뒤에 그냥 목공용 본드로만 결합했습니다. 이렇게 하중을 받지 않는 소품의 경우 사실 타카나 목공용 본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2t 삼나무는 두께가 얇은데다가 나무 자체가 무르기 때문에 타공하거나 피스를 박다가 쪼개질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ABC박스입니다. 그럴듯 해보이만 자세히 보면 톱질 미숙으로 인해 뜯겨 나간 부분, 과도한 사포질로 각이 깍여 나간 부분, 직각으로 잘리지 않은 부분 등...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ABC박스에 자작합판 알파벳을 담아 잘 포장해서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산타할아버지가 줬다면서 유치원에 갔다 온 아들내미가 들고 왔더군요. 무척이나 좋아하더군요. 이미 플라스틱으로 된 알파벳, 펠트천으로 된 알파벳 등 여러 알파벳 세트들이 있지만 나무로 된 알파벳은 처음이기도 했습니다.
집에 쓸려고 사둔 그래픽 스티커지가 있었는데 아이가 그걸 꺼내와서는 박스 위에다가 저렇게 Puppy라고 붙였네요. 개 발바닥 모양도 붙이고요. ABC박스의 앞 부분에는 가방걸고리 작은거를 붙였습니다. 검은색 나사를 썼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저른 작은 잠금장치가 아이의 좋은 장난감인가 봅니다. 계속 열었다 닫았다 잠궜다 풀었다 가지고 놀더군요.
뒤쪽은 저렇게 경첩을 붙였는데 둥근머리 나사를 써야 하는데, 접시머리 나사를 써서 모양이 좀 흉한데다가... 경첩이 안보이게 안쪽을 보링해서 연결했어야 했는데... 시간관계상 그냥 막 달았습니다.
사실은 저런식으로 Butt Joint를 본드로 하는게 아니라 Box Joint로 하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막 목공을 시작한 초보라 감히 엄두를 못내었었죠.
아무튼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형편없기 짝이 없는 박스입니다만... 어쨌든 선물의 알짜는 박스가 아니라 자작합판 알파벳이고, 무엇보다 아들내미가 이 나무박스를 잘 가지고 노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목공을 하는 보람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혹시 알파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런 아이템도 선물로 좋을 것 같아 소개드려요.
전에 만든 자작합판 로우 테이블과 같이 놓아 봤어요. 근데 아직도 아들내미가 저걸 산타할아버지가 준 걸로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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