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가구전시회 못보고 서대문형무소 가다

지지난주 일요일 (9월 1일) 도현아빠님의 "그래비티" 작품이 있는 "동거" 전시회에 갔다가 9월2일 부터 오픈이라서 서울미술관으로 행선지를 급변경했었죠. 그러고 일주일을 벼렀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9월 8일) 다시 한번 가구전시회를 가자고 마눌님과 아들을 설득하고 등떠밀어서 차에 태웠습니다. 집에서 평창동까지는 내부순환도로를 타면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날씨도 좋고 차도 안막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는 듯 했습니다.

전시회가 열리는 평창동의 금보성 아트센터에 도착했는데 너무 썰렁합니다.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잠겨 있습니다. 유리문 안으로 멋진 작품들이 보이는데 들어갈 수가 없네요. 허망하게 금보성 아트센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전시관은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개관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런 전시회가 사람이 가장 많을 일요일에 개관하지 않는 것도 의외거니와 쉬는날이 있으면 전시회 알림 포스터에 명기를 해 놓았으면 이런 삽질을 안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지금 당장 갈곳을 잃은 우리 식구를 어디론가 인도를 해야 합니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었길래 바로 아래에 있는 북악정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북악정은 이 동네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이더군요. 식당도 근사하고 일하시는 분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는데 가격이 쫌 비싸다는게 흠입니다. 육회비빔밥과 갈비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어디로 갈까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요즘 아들이 유치원에서 "우리나라"에 대해서 배운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요즘 애국가도 외워서 부르고, 태극기도 그리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평창동에서 가까운 서대문 형무소로 가기로 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일제에 의해서 지어졌는데 주로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했다고 합니다. 해방후에는 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켰다고 하니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이 오래된 형무소는 1987년까지 유지되다가 의왕으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이 형무소는 김구, 강우규, 유관순 등이 옥고를 치른 곳이라 역사적 가치가 있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88년부터 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되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되었다가 이후 1998년에는 원형복원을 마저 하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사실 아들과 저는 몇달전에 이 곳에 들러 본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가슴이 먹먹해서 아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못해주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오니 조금 마음이 편하더군요. 이곳에는 사형장, 고문장면, 고문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여섯살 아이에게 설명하기에 참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곳은 피해서 다녔습니다.


전제적인 서대문 형무소의 사진 소개는 다음번에 드리도록 하고 이번에는 몇몇 인상적인 것들만 추려보았습니다.

아래 의자는 망루에 놓고 앉아서 죄수들을 감시할 때 쓴 의자라고 합니다. 못으로 대충 때려박아서 만든 의자인데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독립만세운동을 할 때 많은 수의 태극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태극기 목각판을 만들어서 찍어 만들었다고 하지요. 아래 사진이 바로 그 태극기 목각판입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흔드는 것 자체가 큰 두려움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방의 벽에는 수감자들의 사진과 신상기록이 빼곡하게 붙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눈여겨 이분들을 보노라면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마음은 떳떳했을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사진들을 보던 중 정말 포스가 넘치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난 이런것 두렵지 않아! 하는 결연한 표정입니다. 아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이분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한글이 있고, 한국말이 있는 거라고요.


옥사 벽에 붙어 있는 이곳의 큰 태극기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태극기를 최근에 배운 아들내미가 아주 좋아합니다.


무심코 옥사들을 보다가 2층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인 줄 알구요. 인형이더군요.


감방의 바닥은 대부분 소나무 판재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새로 깐 바닥은 나왕으로 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어느 방을 가도 이렇게 장기판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루하고 힘든 감옥생활을 이렇게라도 버텨야 겠지요.


죄수들의 일과표입니다. 밤 9시 취침, 아침 5시 기상, 6시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노역, 무려 10시간 30분 동안의 노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직장인들의 일과표도 비슷할 것 같네요.


밖에 나서면 이렇게 키가 큰 미루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루나무의 이름이 "통곡의 미루나무"입니다. 이 곳은 사형장 앞인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에는 많은 초등학생들이 노트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적곤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는데 마눌님이 말하길 요즘 국사 과목이 다시 중요해지니 이런다면서 씁쓸해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이 나라를 잃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립과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올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만... 아들이 좀 더 알게 되면 다시 또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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