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나무 팔레트로 가구 만들어도 되나?

나무는 부드러우면서도 나름의 내구성을 갖추고 있는 좋은 소재입니다. 그래서 손상이 되지 않아야 하는 기계나 예술작품을 이동시킬 때 받침이나 포장재로 사용됩니다. 이런 것을 팔레트(Pallet)라고 합니다. 팔레트에는 가구와 같은 좋은 나무를 쓰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팔레트 자체는 가구를 위한 나무를 수급하는 좋은 경로가 되기도 합니다. 팔레트는 아래 사진처럼 생겼습니다.

수출입업이나 기계를 많이 다루는 회사는 이 팔레트를 처분하지 못해서 골치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무료로 수거를 해가는 업체도 있기도 하구요. 목공 카페에는 종종 자신이 이런 팔레트를 많이 챙길 수 있는데 이걸로 가구를 만들어도 되는지 묻는 질문이 가끔 올라옵니다. 방부처리가 된 목재를 가구에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팔레트도 어떤 처리가 되어 있지 않나 걱정하는 것이지요.

팔레트는 기계류의 수출입에 많이 사용되는데 목재의 특성상 목재 안에 벌레나 벌레의 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벌레가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 그 나라의 생태계를 교란시켜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팔레트에 사용되는 나무는 살충 처리를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이를 관장하는 조직은 IPPC(International Plant Protection Convention, 국제식물보호협약) 사무국이며 식물위생조치에 관한 국제기준 15 (ISPM No. 15, International Standards for Phytosanitary Measures) 에서는 수출입에 사용되는 나무로 된 포장재를 소독(살충) 처리할 것과 그 소독 방법을 도장으로 찍어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를 IPPC 스탬프라고 하며 아래 사진과 같이 생겼습니다.


IPPC 스탬프 왼쪽의 보리 모양은 IPPC의 로고이며 XX-YYYY-ZZ 형식의 정보가 오른쪽에 담겨 있습니다. XX는 소독처리를 한 국가를 나타내며, YYYY는 소독처리를 한 업체의 고유번호이며 마지막 ZZ는 소독처리의 방법입니다. 소독처리 국가 표시는 두 글자의 ISO 국가코드인데 이 링크를 통해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AT는 오스트리아이고 우리나라는 KR입니다.

소독 처리 방법은 현재 두가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HT라고 표기되면 열처리(Heat Treatment)되었다는 의미이며, MB로 표기되어 있으면 메틸브로마이드(Methyl Bromide)라는 살충제로 훈증처리 했음을 의미합니다. 간혹 DB도 같이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Debarked로서 나무껍질을 벗겼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이 메틸브로마이드의 경우 화학적인 처리 방버인데 이것이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밝혀져서 2008년부터는 메틸브로마이드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메틸브로마이드가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실제로 메틸브로마이드 훈증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서 중독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가 발생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HT로 표기된 열처리는 목재 전체의 온도가 최소 56도로 최소 30분간 지속적으로 가열하여 살충하는 방법으로서 환경적 영향이나 인체에 대한 해로움이 없는 안전한 살충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팔레트에 표기된 IPPC 스탬프를 유심히 보아서 HT로 표기된 것은 가구로 사용해도 무방하나, MB로 표기된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팔레트는 보통 가장 저렴하고 수급이 용이한 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파인류나 나왕 등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끔 자작나무나 단풍나무 등이 쓰이기도 합니다. (주로 고가품을 취급하는 곳) 다만 팔레트로 사용되는 목재는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아서 휘어질 가능성이 많고, 대패 처리도 되어 있지 않아 상당히 거친 편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거친 느낌이나 빈티지 풍의 소재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겠죠.

여하튼 열처리된 팔레트를 구했으면 그것으로 여러가지 가구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팔레트에 사용되는 목재는 주로 못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판재로 분해하고자 한다면 장도리로 못을 다 뽑아야 합니다. 이게 상당히 번거로운 힘든 일 입니다. 혹시나 못이 덜 뽑힌 상태에서 테이블쏘 같은 기계에 넣고 밀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팔레트 재활용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금속탐지기로 못의 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Pallet Funiture 라는 사이트에 가면 팔레트로 만든 다양한 가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팔레트를 분해하지 않고 그 구조를 그대로 사용해서 소파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혹은 팔레트 나무를 모두 분해한 뒤 거친 질감과 빈티지 도색을 통해 색다른 느낌의 테이블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거친 느낌의 수납장도 만들 수 있습니다.


불태워지거나 버려질 목재를 재활용하는 것은 목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창고 앞에 버려진 팔레트를 보시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IPPC 스탬프 확인하여 열처리 여부를 확인하고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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