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 그리고 따뜻한 햇볕... 가을은 최고의 계절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이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이 시기는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바로 알러지성 비염 때문입니다. 저 또한 알러지성 비염을 오랫동안 앓아 왔습니다.
특히 전 인구의 20%정도라는 알러지성 비염 환자는 봄과 가을... 계절이 바뀔때 마다 큰 고통을 겪습니다. 콧물과 재채기는 둘째치고 눈까지 뻑뻑해지는 알러지성 결막염까지 같이 오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짜증이 많이 납니다. 그런데 이 알러지라는 것이 면역성이 강해지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몸의 컨디션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2~3년간은 제가 컨디션이 좋았는지 크게 알러지성 비염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지난주말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지면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요. 베란다에서 뚝딱 뚝딱 만들고 있는데 계속 재채기가 나와서 제대로 뭘 만들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월요일에 단골 이비인후과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알러지성 비염은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는 병이 아닙니다. 조그만 증상이라도 보일 때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컨트롤이 가능한 병입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하며 인사하던 의사 선생님은 유난히 올해 증상이 심하다며 알러지 검사를 해보자고 합니다.
알러지 검사는 어떤 물질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팔에 알러지 유발 물질을 조금씩 떨어뜨린 다음 바들로 찔러 피를 내어 반응을 살펴 보는 겁니다. 일부러 알러지 반응을 살펴 보는 것이라 따금거리고 간지럽고 기분이 더러운 검사지요. 알러지 검사의 결과 제 팔의 사진입니다. 상당히 많은 물질에 알러지 반응이 있습니다.
이 검사를 10년전 쯤에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알러지를 일으키는 것은 개털과 바퀴벌레 그리고 몇몇 꽃가루였습니다. 이렇게 많이 반응이 일어나지도 않았구요. 제 팔을 보면서도 제가 걱정이 되더군요.
이비인후과 선생님 말씀이... 흔히 알러지 유발 물질로 알려진 개털, 바퀴벌레, 집먼지 진드기는 전혀 저한테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문제가 되는 부분은 풍매화의 꽃가루라고 합니다. 제가 거의 모든 풍매화의 꽃가루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풍매화(Anemophily 혹은 Wind Pollination)는 바람에 의해 꽃가루가 날려서 수정이 되는 나무의 꽃을 의미합니다. 보통 꽃이 화려한 이유가 꽃가루 수정을 위해 벌이나 나비를 꾀려고 하기 때문이죠. 풍매화들은 곤충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꽃이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나무를 들 수 있는데 소나무의 수꽃은 송화가루가 덮인 노란색 기둥 모양입니다.
문제는 이 풍매화의 꽃가루가 미세한 입자라 바람을 타고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풍매화의 꽃가루는 입자 크기가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바로 이 꽃가루가 저 같은 사람에게 예민한 코점막과 반응하여 알러지를 일으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꽃가루 알러지라고 하는건 장미나 백합과 같은 꽃의 가루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 충매화 꽃가루들은 입자가 커서 바람에 거의 날리지 않고 오직 곤충에 의한 수정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풍매화의 종류로는 소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삼나무, 포플라(미류나무), 밤나무, 느릅나무, 아까시나무, 버드나무 등 아주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풍매화의 꽃가루는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마스크를 쓰거나 알러지가 심할 때는 외출을 삼가는 수 밖에요.
의사선생님 얘기가 알러지를 막으려면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이 되면 안된다는데... 그래서 밖에 나갈 때 마스크와 안경을 꼭 쓰고 외출 후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으라고 합니다. 특히 이 풍매화 꽃가루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게 아니라 가장 골치아프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래 사진처럼 완전 무장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목공을 하는 것은 알러지와 관계 없냐고 여쭤봤습니다. 나무 줄기는 꽃가루와 달리 알러지를 유발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답니다. 그래도 나무가루를 흡입하는 것은 알러지 유발 가능성이 높으므로 유의하라고 하네요.
지난 주말 멀바우 판재를 등대기톱으로 톱질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멀바우는 단단한 나무인데다가 등대기톱은 톱날이 가늘어서 톱밥이 아주 미세했습니다. 제가 풀썩이기라도 하면 나무먼지가 공중에 떠돌았고 그때마다 재채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특히 멀바우 같은 열대수종들은 알러지를 유발하는 경향이 좀 높은 편이라고 하는 정보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목공을 할 때 마스크를 꼭 쓰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저 정도까진 아니더라도요.
다행히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사흘 정도 지나니 증세가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알러지 약 때문에 졸리는 것은 정말 힘드네요.
베어진 나무로 뚝딱거리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살아있는 나무를 보고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참으로 가혹한 병입니다.
제발 나무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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