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대한 얘기가 뉴스에 나오길래 제가 알고 있던 그 박물관들 중의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만... 알고보니 2012년 12월에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더군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고종대의 대한제국에서 부터 일제치하의 독립운동사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현대사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의 역사에 대한 것이라면 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근대사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광화문 광장 길건너 미국대사관 옆에 있던 옛날 문화체육부 청사 자리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래서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외형이 관청스러워서 지나가면서 그곳에 박물관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질 않습니다.
주차공간은 별도로 없어서 인근의 세종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저희는 주로 근처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고 받는 무료주차 시간을 이용하여 이 박물관을 구경갑니다.
아들내미가 유치원에서 대한민국에 대해서 배우고 있더라구요. 태극기도 그리고 애국가도 배우고... 그래서 교보문고를 간 김에 아들내미 손을 잡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들렀습니다. 개관한지 불과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직 좀 썰렁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나름 볼만한 박물관인 것 같습니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을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층으로 들어서니 "우리 역사 보물창고"라는 특별전시를 하더군요. 무료이긴 한데 입장인원 제한이 있어 예약이 필요했습니다. 저희는 다행히 인원 제한에 걸리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이곳은 주로 저희 세대가 어릴때 보고 만지고 겪었던 즉 70~80년대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더군요.
아이들에게 아래 사진과 같은 스마트패드를 나누어 주어서 각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스마트패드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어 좋더군요.
제가 국민학교때 메고 다니던 가방 같습니다. 색깔이며 디자인이 눈에 익네요.
옛날 텔레비젼은 이렇게 나무상자 안에 들었고 셧터문이 있었죠. 요 모델도 우리 집에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예전 어머님들은 미싱 하나씩 다 가지고 있었죠. 우리집에는 브라더 미싱이었는데 여기는 싱거미싱이 있네요. 미싱으로 어머니가 참 많이 만들어 주셨는데요... 요거는 손으로 돌리는거고 우리집에는 발로 페달을 밟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얼레입니다. 이 얼레는 3분턱맞춤이라는 우리나라 전통의 결구법으로 만들어진 고급 얼레입니다. 우리네 서민들은 그냥 4각으로 된 얼레를 썼었죠.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 참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는 수학의 정석도 봤지만 해법수학을 더 많이 본 것 같네요. 그래도 수학의 정석도 대여섯번은 통독한 듯 합니다. 요즘도 이런 책으로 공부하나요?
특별전시라고 하기는 하는데 공간도 작고 제 나이또래 사람이나 옛날의 향수에 젖으면서 얘기거리가 있지 아이들이 흥미있어 할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70~80년대 풍속을 보여주고 싶으면 이런 물건같은 정적인 것 보다는 그당시에 아이들이 놀았던 자치기, 오징어땅콩, 비석치기 등의 민속놀이를 비디오로 보여주고 함께 해보게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흥미를 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층부터 본 전시관입니다. 3층에 들어서니 아래 사진과 같은 프롤로그 영상이 반복되는데 큰 태극기가 화면에 나오니 마침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라 아들내미가 정말 좋아하네요. 여기서 갈 생각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태극기는 계속 나옵니다. ㅡ,,ㅡ
3층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에 대한 영역이라 이런 태극기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태극기들은 각자의 애절한 사연이 있는 것들이라 범상치는 않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결의와 서명이 잔뜩 써있는 태극기도 가슴 뭉클했습니다. 이런 태극기를 맘놓고 흔들수 있게 된것도 불과 70년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4층은 6.25 전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아직까지도 그 상처가 남아있는 큰 전쟁이죠.
독립은 되었지만 38선을 경계로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합니다. 이것이 분단의 단초가 되었죠. 당시 38선에 저런 팻말이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우리민족의 가장 불행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비행기 조종사들이 소지했다는 증명서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한글로 써 놓았네요.
국민학교 시절의 콩나물 교실을 표현한 인형작품이네요. 우리때만 해도 한반에 60명 정도였죠. 요즘은 20~30명 정도라던데...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정말 옛날의 콩나물시루 교실을 보는듯 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아이들 모두 순박하고 착했죠. 모두가 어렵게 살았지만 모두가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이 책걸상 기억나시죠? 아들내미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바로 그 옛날 책걸상입니다. 짝지랑 싸우면 가운데 칼로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손등을 연필로 찍었던... ㅡ,,ㅡ 기억이 납니다. 지우개 따먹기도 엄청 했구요.
1960년에 치러진 대한민국의 4대 대통령선거의 포스터가 눈길을 끕니다. "나라위한 팔십평생 합심하여 또모시자"라는 아부의 극치인 이런 표현이 선거포스터에 떡하니 쓰였다니 참 옛시절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기붕 부통령 후보는 왜 "이번에는 속지말자"라는 걸까요? 그건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기붕이 민주당의 장면에게 아슬하게 져서 부통령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자유당의 이승만이 부통령은 민주당의 장면이 되었으니 장면의 처지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은 안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디 부통령의 권한이 막강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대놓고 장면을 무시하고 박대했습니다. 심지어 장면에 대한 암살시도도 있었습니다. 참 옛날입니다.
1960년에 치러진 이 4대 대통령 선거는 3.15 부정선거라고 잘 알려진 바로 그 선거입니다.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떠나게 됩니다.
요건 직전인 3대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포스터입니다. 신익희가 대통령후보로 장면이 부통령후보로 나왔죠. 장면은 당선이 되어서 이승만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습니다만... 신익희씨는 호남유세를 가는 열차안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비내리는 호남선"이라는 노래가 히트를 쳤다죠. 신익희씨의 묘는 수유리에 있는데 북한산 둘레길 중 순례길 코스에서 뵐 수 있습니다.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좌/우로 나뉘어 사상투쟁을 하고 그것이 분단으로 전쟁으로 이어지고 종전 후에도 그 앙금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만 하고 깨끗하게 물러났다면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처럼 얼마나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노욕이 명예에 먹칠을 한 셈입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옥상도 개방되어 있는데 꼭 가시보라고 권합니다. 이 옥상이 세종로와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전망대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청와대 방향은 보안때문에 사진을 못찍게 하던데 이곳은 허용하더군요.
어쨌든 첫 관람이고 무료주차 시간의 압박때문에 서둘러 한바퀴 휭 돌았습니다만... 두어번 찬찬하게 둘러보아도 괜찮을 듯합니다. 우리 세대들에게는 참 공감되고 이해되는 구석이 많지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근현대사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구성을 다양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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