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난 주말 마지막 벚꽃 구경을 가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2주 전에 안양천 벚꽃 구경을 갔더랬습니다만, 내년에도 또 올 벚꽃들이지만, 그래도 가고 싶더랬습니다. 벚꽃은 다시 필 것이지만 아들은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 가니까요.
그래서 토요일에는 워커힐 호텔로 벚꽃 구경을 갔습니다. 길은 좁은데 너무 많은 차량들이 몰려 주차할 곳도 없고, 길은 막히고 해서 그리 즐겁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쉬워서 그 다음날은 2015년 4월 12일 일요일 아침, 식구들과 함께 우리 동네에 있는 금호산으로 나섰습니다. 이날 벚꽃 구경삼아 걸었던 코스는 제가 애용하는 걷기 코스로 [신금호역->금호산->생태다리->매봉산 정자->유아숲체험장->버티고개->신당동 성곽길->장충동]에 이르는 5km 구간입니다. 서울숲-남산길의 일부와 서울 성곽길의 일부를 엮은 길이기도 합니다.
이 코스는 야트막한 산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볼것도 많고 아이들이 놀거리도 많아서 가족끼리 같이 걷기도 좋습니다. 특히 지난주처럼 벚꽃이 한창일 때 가면 가장 좋고, 5월에 겹벚꽃이 필 때 가도 좋고, 야밤에 가도 좋습니다. 가로등이 다 켜져 있고 성곽길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코스를 자세히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신금호역-금호산-생태다리-매봉산 정자 구간
코스의 시작은 5호선 신금호역입니다. 1번 출구로 나와 신당동 방향으로 200미터 정도 올라가면 대경중학교로 올라가는 아래와 같은 길이 나옵니다. 이곳은 현재 아파트를 새로 짓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공사하느라 담장을 쳐 놓았지만, 원래는 오래된 집들이 있던 고즈넉한 동네였습니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7부 능선 즈음에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참 답답합니다.
이곳을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잘 자란 벚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습니다. 볕이 좋은 곳이라 그런지 생육상태도 좋습니다.
벚꽃의 모양도 좋고 빽빽하니 많이도 피었습니다. 코스의 시작부터 이렇게 벚꽃들의 향연입니다.
대경중학교와 동산초등학교를 지나면 이런 너른 공원이 나옵니다. 며칠 전 여기서 금호산 벚꽃 축제가 열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런 만국기들이 펄럭입니다. 이 공원에는 벚나무들도 많지만, 아름드리 겹벚나무도 제법 있습니다. 벚나무들은 4월 중순에 꽃을 피우지만, 꽃이 더 풍성한 겹벚나무들은 5월초에 꽃을 피웁니다. 그러니 5월에 와도 벚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들은 이곳을 여러번 왔습니다. 여기까지 왔다가 힘들다고 징징대어 그냥 돌아간 적도 있고, 생태다리까지 간 적도 있고, 가장 멀리 간 것은 매봉산 정자까지 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도 지나 장충동까지 가야하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리 목적지를 설명해 주었지만 아이들이 그렇듯 건성으로 듣습니다.
맨발공원의 지압물들이 장애물로 보이나 봅니다. 뛰어넘고 밟고 구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몇바퀴를 이렇게 뛰어 놉니다.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보니 바로 머리 위에 직박구리들이 진을 치고 있네요. 직박구리야 집 앞에도 많지만, 아들이 제대로 가까이 본 적이 없길래 당겨 찍어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직박구리의 바짝 선 머리가 멋있지 않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맨발공원을 나서면 바로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금호산의 북사면 쪽인데, 개나리들이 예쁘고 남산을 향한 조망이 좋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금호산 남쪽이며 군부대가 있는 쪽인데 벚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벚꽃 구경을 왔으므로 왼쪽으로 갑니다.
계속 아스팔트 길로 가면 아파트 단지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운치가 있는 계단입니다.
이쪽은 이렇게 벚나무들이 많습니다. 벚꽃 천지입니다.
이 많은 벚꽃들이 비온 뒤 다 떨어졌겠지요.
길을 가다가 중간 중간 돌아보면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이렇게 큰 키로 자라는 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건 반칙인 듯 싶습니다.
금호산을 빙 돌아서 이제 생태다리로 가는 중입니다. 편안한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여기에 벚나무들만 있는 건 아니죠. 요즘 은행나무들의 이파리가 나고 있습니다. 아들을 안아 올려 조그만 은행잎을 가까이 보여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노란 은행잎 떨어진 걸 주워서는 우산 같다며 머리에 쓰곤 했습니다.
생태다리에 도착했는데, 아이가 힘들다고 징징댑니다. 이럴 때는 뭐 어쩔 수 없습니다. 벤치에 앉아 싸가지고 간 간식을 먹이고 다독여야 합니다. 생태다리에 아름다운 홍매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생태다리에는 박태기나무도 많습니다. 아마 일주일 후에는 박태기 나무의 꽃도 절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정말 매혹적인 색입니다. 콩과나무의 특징인 콩자루 모양의 열매가 아직도 달려 있네요.
조팝나무 꽃들도 만개했네요. 꽃의 모양이 튀긴 좁쌀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단풍나무도 봄에 수줍은 꽃을 피웁니다. 이파리가 난 후 아래를 향해 수줍게 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꽃을 찾고 이름을 불러주며 갑니다. 소귀에 경읽기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중에 보면 그 꽃을 기억하고 알고 있더군요.
방송고등학교를 지나면 이렇게 매봉산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나옵니다. 이 길도 참 운치 있습니다. 여기는 복자기 나무들이 밀집해 있어, 가을에 오면 멋있습니다.
매봉산 정상에 가까워 지면서 경사가 급한 계단이 좀 나옵니다. 아들이 또 힘들다며 뻗댑니다. 제 스마트폰을 꺼내 만보계를 보여주며 이제 겨우 4천보 왔다고 하니, 폰을 뺏어 들고는 계단을 뛰어 올라갑니다. 도대체 힘들다면서 왜 뛰어 올라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만치 뛰어 올라가서는 만보계를 들여다보며 올라가는 걸음수를 봅니다.
어찌어찌해서 매봉산 정자까지 왔습니다. 이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한강의 풍경도 일품입니다만, 이날 시야가 별로 좋지 않고, 여러번 와 봤기 때문에 그냥 건너 뜁니다.
유아숲체험장-버티고개-성곽길-장충동 구간
매봉산 정자에서 내려가는 길은 여러가지 있습니다. 다음 행선지인 유아 숲체험장으로 가려면 남쪽인 극동아파트쪽으로 내려서야 합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계단길입니다. 서울숲-남산길과는 약간 다른 길입니다.
약 50미터 정도만 내려가면 이렇게 탁 트인 곳이 나옵니다. 이 곳은 서울시에서 어린이들이 숲에서 놀 수 있도록 조성한 유아 숲체험장입니다. 현재 관악산, 우장산, 남산 그리고 이곳 매봉산 등 여러 곳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어린이들이 숲에서 재밌게 놀 수 있도록 자연물을 이용하여 놀이터를 조성한 겁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각종 야생화들을 심어 놓은 화단입니다. 관계자 분들이 봄을 맞아 분주히 뭔가를 심고 있더군요.
이렇게 소박한 이름표도 달고 있어서 아이들이 우리 풀과 꽃을 익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이른 봄이라 새싹 수준들입니다. 돌단풍만 꽃을 피웠네요. 5월에 오면 제법 볼만 할 것 같습니다.
매봉산은 성동구, 중구, 용산구를 걸쳐 있는 산입니다. 이 곳은 용산구 구간입니다. 여기도 금호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벚꽃들이 좋습니다.
중간에 생태연못이라고 나오는데 소박하네요. ^^ 애기 욕조를 이용한 것이 재밌습니다. 저런 돌틈 사이를 물고기들이 좋아하지요.
중간중간 이렇게 자연물을 이용한 놀이터가 나옵니다. 통나무를 타고 평상에서 뛰고 뭐 그런 개념입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단체로 많이 올 것 같습니다.
이 부근에는 진달래가 제법 많네요. 아들이 진달래는 처음 본답니다. 집 앞에 피어있는 철쭉과 구분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유아숲체험장 안내도인데, 우리는 7번부터 거꾸로 내려온 겁니다.
여기는 경사놀이터입니다. 아들이 제법 용감하게 줄을 잡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내려오라고 하니, 무섭다고 웁니다. 헐~ 경사가 불과 15도 정도밖에 되질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같이 손을 잡고 내려 왔습니다.
이렇게 군데군데 있는 놀이시설을 즐기면서 매봉산 아래까지 내려 왔습니다.
남산이 바로 앞 입니다. 남산의 벚꽃들도 희끗희끗 보이네요. 사람들이 벚꽃 구경하러 남산에 많이들 가던데, 제 의견으로는 금호산이 훨씬 더 예쁜 것 같습니다. ^^
이렇게 생긴 계단으로 진행하면 버티고개로 넘어가게 됩니다.
앞에 보이는 흙길이 버티고개 위로 놓인 생태 통로입니다. 이 통로가 생긴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매봉산에서 남산 자락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태통로에 예쁘게 핀 튤립들이 인상적입니다.
생태통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정자를 향해 약간의 오르막을 진행합니다. 이 구간은 굵은 모래가 깔려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면 위험합니다.
정자에서 쉬어가도 되지만, 체력들이 괜찮은 것 같아 계속 갑니다. 정자 앞에는 이렇게 성곽이 있습니다. 성곽 바깥도 좋고 성곽 안쪽도 좋습니다만 오늘은 성곽 안쪽으로 가 봅니다. 저는 밤에 올 때는 바깥쪽으로 낮에 올 때는 안쪽으로 갑니다. 성곽 바깥쪽은 야경이 매우 아름답고, 성곽 안쪽은 높아서 조망이 좋기 때문입니다.
성곽 안쪽은 이런 풍경입니다. 아들이 이 길 기억난다며 좋아합니다. 당연하지요. 아들 데리고 이 길만 벌써 네번째입니다. 그래도 기억해주는 아들이 고맙습니다.
늘 있던 곳에 역시 제비꽃들이 예쁘게 피어 났습니다. 아들이 이 제비꽃도 기억 난답니다.
중간에 이런 벤치가 있는데, 아들에게 기억 나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3년전 2012년 4월 말, 그러니까 아들이 다섯살일 때 처음 여기를 저와 둘이 걸었더랬습니다. 그때는 장충동에서 거꾸로 올라왔는데 힘들다고 징징대길래 여기 앉아서 간식을 까먹었습니다. 그 얘기를 해주니 기억 난다고 하네요. 3년 새 참 많이 컸습니다.
성곽 바깥쪽은 신당동입니다. 조용한 동네지요. 성곽 안쪽은 조경수들 위주로 꾸며져 있습니다. 꽃나무들은 별로 없고 소나무, 느티나무, 사철나무 위주입니다.
아들이 여기도 기억하네요. 성 안팎으로 나갈 수 있는 암문인데 여기 운동기구에서 운동했던 기억이 난답니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장충체육관 바로 옆입니다.
아들이 이제서야 힘들다며 저보고 업어 달랍니다. 업고서 길을 건너 장충동 족발 골목으로 갔습니다. 원조를 주장하는 여러집이 있습니다만... 원조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집에서 족발을 시켜 먹었습니다. 역시 맛있더군요. 괜히 장충동 족발이 아닙니다.
작년 이맘때도 벚꽃이 너무 좋았겠죠. 그때 벚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습니다. 올해도 피어난 벚꽃을 보며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원합니다. 저도 제 아들 안전한 곳에서 키우고 싶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