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집 대화의 화두는 "역사"입니다.
좀 뜬금없지만 우연히 보게 된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서 시작되는 얘기입니다. 이 프로는 어떤 시대의 한자락을 여러명의 패널이 토론하는 식으로 짚어보는데, 일종의 역사 예능이라 할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적 교훈을 게을리하지 않는 미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마나님도 아이도 주말이면 빼놓지 않고 본방 사수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패널로 나오는 분 중의 한분이 "최태성" 선생님으로 고등학교 교사이자 유명한 EBS 강사입니다.
마나님이 이분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올곧은 관점에 반했나 봅니다. 어느날 마나님이 두꺼운 책을 재밌게 보고 있길래... 뭔가 봤더니 바로 "최태성" 선생의 "한눈에 사로잡는 한국사"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한숨에 주파한 마나님은 이후로 드라마 "징비록"을 볼 때, 역사가 담긴 영화를 볼 때, 아이의 책에서 역사적인 사실이 나올 때 등등 기회만 되면 우리집의 역사 토론을 주도합니다. 정말 마약같은 책인가 봅니다. 특히 2권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이후 현대사에 대해서는 자신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합니다.
독립기념관에 가다
이런 와중에 대전 처제네에 갈 일이 생겼는데, 대전에 간 김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독립기념관을 들러기로 했습니다. 독립기념관은 제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가보고는 이후로 가본 적이 없어 기억이 가물가물 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우리 가족에게 독립기념관 만큼 좋은 곳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전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독립기념관이 있는 천안에 도착하니 문닫기 두시간 전입니다. ㅡ,.ㅡ 원래 우리 식구만 가기로 했는데, 아직 어린 작은 조카가 같이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독립기념관 주차장에서 전시관까지 가는데 제법 많이 걸어야 하더군요. 두시간이면 넉넉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택도 없는거 였습니다.
요즘 아들이 동생 보는 재미를 아나 봅니다. 막내 조카 유모차를 굳이 자기가 밀겠답니다. 혼자 자라는 아들이 애틋해서 동생 낳아줄까? 물어보면 싫답니다. 자기도 감정이 복잡한 거겠죠?
그런데 돌발상황이... 막내 조카가 겨레의 집에 있는 저 조각상을 무서워하는 겁니다. 아무리 달래도 요지부동입니다.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쩝.
겨레의 집 앞에 태극기들이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 한마당이 있습니다. 아들과 조카가 정답게 포즈를 취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감회가 빠질 수 없지요. 얼마전 3.1절에 들었던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에서 3.1운동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날 "독립선언서"가 학생과 민중들에 의해 낭독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독립을 촉구하는 것도 아니고 각오하는 것도 아니고, "선언문"입니다.
즉 1919년 3월 1일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독립선언서에 따르면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고 했으니 대한제국식의 왕정이 아닌 공화국으로서의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진 겁니다. 물론 당시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쓰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대한민국의 기원이 여기서부터 였다는 것이죠.
1948년 처음 만들어진 제헌 헌법의 전문을 보면 "3.1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건립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요즘 8월 15일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던데,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3월 1일이 되는 것이지요. 8월 15일 건국절 주장이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시도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여하튼 이들 태극기들을 보면서 3.1운동과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 떠 올랐습니다.
전시관 하나도 못보고 이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싶어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아들과 저만 빨리 제1전시관을 보기로 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철수해 휴게소에서 쉬기로요. 그래서 다시 아들과 함께 겨레의 집 뒷편에 있는 제1 전시관으로 향합니다. 이게 뭔 삽질인지...
겨레의 집에 있는 이 조각상은 "불굴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일들을 겪어온 민족이긴 합니다. 우리가... 특히 근대사에서...
겨레의 집 뒷편에 이런 너른 마당이 있고, 마당을 삥 둘러서 8개의 크고 작은 전시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제1 전시관 "겨레의 뿌리"만 보기로 했습니다.
고인돌을 만드는 방법
겨레의 뿌리관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살아온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의 전시물들을 보고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들과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많더라는 겁니다.
들어서자 마자 고인돌이 보입니다.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체가 어디에 모셔지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돌기둥 사이에 이렇게 놓인다는 걸 저도 아들도 처음 알았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이 인형으로 잘 설명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먼저 이렇게 산에서 지렛대를 이용하여 큰 돌을 아래로 밀어 내립니다.
그리고 나무를 바퀴 삼아 돌을 올려놓고 힘을 합쳐 이동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무덤이 될 곳에는 이렇게 돌 기둥 두개를 세워 놓습니다. 그리고 흙을 쌓아서 조그만 동산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흙동산 위로 윗돌을 끌어 당겨 올립니다.
이제 쌓았던 흙을 걷어내면 고인돌이 됩니다. 이렇게 큰 돌을 어떻게 올렸을까라는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결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산성 축조
한양 성곽길 일주도 했었지만, 그 옛날에 돌로 성곽을 어떻게 쌓았을까 궁금했더랬습니다. 일단 이렇게 전체적으로 성곽을 쌓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어 이해가 쉬웠습니다.
옛날에도 비계가 있었네요. 그리고 네모 반듯한 돌을 주변에 쌓고 안을 자갈로 채웠네요. 당시에 시멘트가 있었다면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지은 성곽은 비바람 태풍에 무너지기 일쑤여서 민중들을 힘들게 했다지요.
가야의 철기 제조
가야의 제철 공방도 재현해 두었네요. 철광석을 캐어와서 가마에서 녹인 다음 틀에 붓고 담금질합니다.
그렇게 해서 칼과 갑옷을 만들었으니 작은 나라 가야가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거겠죠.
그 외에 다른 전시물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아빠 나 저거 알아" 하면서 저의 손을 이끕니다. 저도 역사책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무늬 막음기와"입니다. 신라 선덕여왕대에 지어진 절터에서 발견되었다지요.
이어서 팔만대장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팔만대장경은 나무에 일일이 조각하여 만들어진 목판인데 천년이 넘는 동안 깨끗하게 보관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습니다. 팔만대장경은 주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주 단단한 나무들이지요.
이 나무들은 소금에 절이고 삶고 오랜기간 건조하는 정성을 들인 후에 사용되었다고 하고, 바람이 잘 통하고 글자부분이 부딪히지 않게, 경판 양끝에 높은 변죽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옻칠을 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원형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이용하여 목판 인쇄를 하는 모습도 재현되어 있어 아이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침략을 받았다고 배워 왔습니다. 대륙세력의 끝 지점이고, 해양세력의 시작지점이니 그럴 겁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는 안타깝게도 요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왔던 살수대첩을 표현한 전시물인데 스케일이 아주 큽니다. 흔히 상류를 막아 수공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역사적으로 기록된 바는 없다고 하네요. 이 전시물에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수군들이 보입니다.
요즘 징비록 때문에 다시 임진왜란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론 징비록은 유성룡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라 이순신의 수군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감만은 크겠지요.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의 위용은 참으로 우람합니다. 거북선을 재현한 것은 여럿 보았으나 그 안에서 수군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표현한 재현은 처음입니다. 인상적입니다. 아들이 꼼꼼이 보며 좋아합니다.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의 명량해전을 표현한 전시물입니다. 이렇게 지형과 함께 군선의 배치를 표현해주니 이해가 쉽네요.
울돌목 바로 뒤에 전라우수영이 있었네요. 이순신 장군이 수행했던 많은 해전들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학익진으로 유명한 한산도대첩입니다. 이순신의 해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데는 배의 구조와 수종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배는 용골을 참나무로 쓰고 나머지를 소나무로 했기 때문에 매우 튼튼하고 무겁고 안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의 배는 일본에 많이 자라던 삼나무로 만들어 졌답니다. 아시다시피 삼나무는 굉장히 약한 나무입니다. 그러니 돌격전을 하면 일본 배가 모두 다 부서지지요.
그리고 일본은 원정을 오는 입장이라 빠른 속도가 나는 형태의 배였고, 조선의 배는 수비를 하는 입장이라 속도는 느리지만 바닥이 평평하고 무거워 안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배에 그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있었던 것도, 화포를 발사하고도 반동을 이기며 안정적으로 버텼던 것도 다 그런 이유라고 합니다. 반면 일본의 배는 화포를 장착하고 운용하기에 배도 약하고 구조도 불안정했던 것이죠.
이런걸 보면 이순신이 명장인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조건에서만 싸워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균이 수군을 말아먹은 후 다시 복귀한 이순신에게 선조가 뭍으로 나와 싸우라 권했지만 바다에서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가 비록 쪽수는 작지만 이런 구조적인 배의 유리함이 있었기 때문에 수적인 열세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겁니다. 육지에서는 변수가 적지만 바다에서는 변수가 많으니까요.
조선이 비록 조총이라는 휴대용 화기에는 뒤쳐졌지만 화포와 화약 기술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건 신기전이라는 일종의 다련장 포이고...
이 로켓처럼 생긴 것은 "대장군전"이라는 포탄으로 "천자총통"에서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장군전의 모양이 굉장히 현대적인 미사일과 비슷해서 놀랍습니다. 주로 배를 격파하는 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지피지기 후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싸우는 것이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라고 아들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제1전시관에서 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역사로의 즐거운 여행을 했더랬습니다. 아직 못가본 곳이 더 많으니 다음에 또 오자고 약속도 했습니다.
다음에 대전에 내려올 때마다 들러서 한두 전시관씩 보기로 했습니다. 오랫만에 들른 독립기념관, 오래된 곳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참 알찬 것 같습니다. 천안에 있으니 오며가며 들러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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