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목공을 하는 분들이 대패에 입문하게 되면 마치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오는 듯한 도약의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대로 대패질하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는 서양식 대패든, 당기는 동양식 대패든 대패날이 아무리 잘 세워져 있든 대패질하는 나무가 잘 고정되지 있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체라고 하는 건 든든한 작업대를 의미합니다. 저처럼 베란다에서 목공하는 분들은 공방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아름답고 무겁고 든든한 작업대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가족이 모두 사용하는 넓지 않은 베란다에 아빠의 취미생활 만을 위한 (가족의 시선으로) 둔탁하고 위험해 보이는 작업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좁은 베란다에서 넓은 판재로 작업하려면 작업대를 수시로 옮겨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가볍디 가벼운 간이 작업대를 쓰고 있습니다.
잘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패질 하게 되면 대패가 쭉 앞으로 나가는 중에 나무가 움직이면서 아름답지 않은 계단현상이 생기게 되고, 대패밥(shaving)의 길이에 비례하는 대패질의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게다가 작업대가 들리면서 아랫집으로 쿵쿵하는 소리와 진동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베란다 목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좌우명, "니가 목공하는 걸 이웃에게 알리지 마라"는 생존 조건이 위태롭게 됩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한줄기 빛을 보다
작업대가 자꾸 움직이니 대패질 자세가 부자연스러워 집니다. 원래 대패질 할 때는 스탠스를 좀 넓게 안정적으로 잡고 손이 아니라 몸을 평행으로 부드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작업대가 자꾸 들리고 움직이니 한 발을 작업대 가로대 위에 올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평행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팔만 움직여 대패를 밀게 됩니다.
이렇게 나쁜 자세로 대패질하면 금방 어깨죽지와 팔이 쑤시고 아프게 됩니다. 저번에 거친 낙엽송 판재를 나쁜 자세로 대패질하면서 얻게 된 근육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런 와중에 몇가지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는 대패를 쓰니 작업대 앞쪽을 벽에 붙이면 매우 안정적으로 대패질을 할 수 있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베란다라는 공간이 양쪽 모두 유리창이라는 겁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대패질하는 판재의 앞부분을 샷시 기둥에 기대어 대패질하니 비록 판재의 끝까지 대패를 밀 수는 없지만 매우 안정적으로 대패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안에서 보던 마나님이 샷시가 흔들린다면 위험하다고 이렇게 하지 마랍니다.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대패질하다가 샤시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재앙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며 계속 고민했습니다. 가벼운 작업대에서 대패를 밀다보면 가장 큰 문제가 자기 몸쪽의 작업대 다리가 계속 들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작업대가 들리지 않도록 발로 밟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다리가 들리지 않으면서도 작업대가 앞으로 밀리지 않을거니까요.
제 작업대 Wolfcraft 마스터 200은 다리 아랫 부분에 구멍이 있더군요. 그렇다면 이 구멍을 이용해서 발판을 고정하고 이를 밟고 대패질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들자 즉시 자투리 나무를 찾아 아래와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냥 피스로 고정하여 ㄱ자 형태로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다리 아래의 신발 때문에 턱이 있어서 자투리 하나를 덧댄 다음 볼트와 너트로 단단하게 죄었습니다.
대패질할 때는 사진과 같이 오른발로 발판을 밟고, 왼발은 앞쪽 바닥에 두거나 작업대의 가로대를 살짝 밟으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작업대가 살짝 밀리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작업대 들려서 쿵쿵 거리는 일은 없더군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건 마치 알몸으로 있다가 내복 정도는 입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간이 조치를 취하고 몇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거친 판재를 나사못으로 결합하다 보니 약간씩 유격이 있고 삐걱거리며 흔들립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제대로 만들어 보리라 결심했던 터였습니다.
제대로 된 발판 만들기
제대로 된 발판은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낙엽송 판재를 도브테일로 결합하기로 했습니다. 멋진 도브테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므로 왠만하면 도브테일로 하려고 합니다.
일단 거친 낙엽송 판재를 깨끗하게 다듬습니다. 완벽하게 평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대충 했습니다.
테일을 두개 만들 것이므로 69/2인 34.5mm로 캘리퍼스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윗쪽의 내경을 재는 침을 이용하여 디바이더(divider)처럼 사용하여 점을 콕콕 찍어줍니다. 저는 오히려 디바이더보다 이게 더 편하더군요.
힘을 너무 많이 주면 마찰열이 발생해 아래 사진처럼 톱날이 끊어지기 쉽습니다. 톱날을 너무 느슨하게 죄어도 잘 끊어집니다. 최대한 팽팽하게 당겨 직선이 되도록 하고 살살 톱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렛쏘 말고 조금 더 두꺼운 스크롤쏘 날을 쓰는 코핑쏘(coping saw)를 쓰면 톱날이 부러지는 스트레스가 좀 덜합니다. 대신 곡선 운전은 좀 더 요령이 필요합니다.
테일의 양쪽 끝은 톱으로 간단하게 잘라낼 수 있습니다.
실톱으로 대충 잘라낸 부분은 끌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공방에서는 판재를 아래로 두고 망치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한번에 날려 버리지만, 베란다에서는 그렇게 못합니다. 대신 이렇게 판재를 세우고 망치를 옆에서 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소리는 날 지언정 진동이 아래층으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끌은 날이 잘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테일보드가 다 정리되었습니다. 톱이 너무 지나간 것이 좀 아쉽네요. 요즘 노안이 심해서 조금만 날이 어두워지면 침침해서 잘 보이질 않아 그렇습니다.
테일의 모양을 핀 보드로 복사할 차례입니다. 이렇게 코너클램프를 이용하면 간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칼금을 넣었더니 역시 노안이라 당췌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연필로 다시 복사를 했는데, 이게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핀보드도 테일보드와 과정은 같습니다. 톱질하고 실톱으로 필요없는 부분을 날리면 됩니다.
그리고 옆 끌치기로 정리합니다.
이제 테일과 핀을 끼워볼 차례입니다.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만... 거의 x바람이 드나들 정도로 큰 틈이 생겨서 흔들흔들 합니다. 칼금을 기준으로 핀을 잘랐으면 괜찮았을 텐데, 뭉퉁한 연필 끝으로 선을 그렸고,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선 따라 정확하게 잘랐더니 생긴 일입니다. 이놈의 노안이 문제라고 변명해 봅니다만... 칼금을 잘 넣었다 할지라도 약간 더 남기고 잘라내는 것이 피팅하는데 더 좋은건 분명합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틈이 너무 많다면 틈을 좁혀 줘야지요. 목공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목공본드가 너무 강력해서 새살을 덧붙이는 건 아주 쉽다는 겁니다. 얇은 나무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결방향이 짧아서 못쓰는 판재가 딱입니다.
폭이 넓은 끌을 적당한 위치에 대고 살짝만 망치로 툭 때리면 이렇게 쩍 갈라져서 얇은 나무 조각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이거 모를 때는 얇게 톱으로 켠 적도 있습니다. ㅡ,.ㅡ
워 어쨌든가 얇은 나무 조각에 본드를 바르고 붙인 다음 단단히 클램핑해 둡니다. 요렇게 생긴 좁고 긴 입을 가진 스프링 클램프가 이럴때 유용합니다.
이제 테일보드를 끼워보면서 끌로 조금씩 살을 덜어내는 피팅 작업을 합니다. 부드러운 스프러스로 살을 붙였기 때문에 약간 빡빡해도 땅땅 때려 넣으면 들어가므로 너무 헐렁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딱 맞게 피팅된 것을 확인했으면 본드를 바르고 결합합니다.
이렇게 테일을 핀보드로 밀어주는 방향으로 클램핑하면 됩니다. 그리고 테일보드와 핀보드가 직각이 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너무 쎄게 죄면 직각에서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테일과 핀의 마구리면이 상대편의 판재에서 튀어 나올수도 있고, 움푹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이렇게 대패로 평을 잡아주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도브테일 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면이 바닥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거지요. ㅡ,.ㅡ 그래서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이제 발판을 설치할 차례입니다. Wolfcraft 마스터 200 작업대의 발에는 이렇게 구멍이 나 있어 볼트를 끼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의도로 구멍을 내 놓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죠.
발판은 많은 힘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볼트와 너트로 죄면 조금씩 풀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 와셔로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스프링 와셔로 너트가 풀리는 것을 방지해주면 좋습니다.
구멍의 직경이 6mm 이므로, 6mm 드릴비트를 이용하여 발판에 구멍을 뚫을 위치를 콕 찍어 줍니다. 그리고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작업대 다리의 플라스틱 신발로 인해 생기는 간격을 메꾸기 위해 이렇게 얇은 판재를 본드로 덧대 줍니다.
작업대 다리 안쪽에서 본 모양입니다.
대패질할 때 이렇게 발로 발판을 밟으면 작업대가 들리지 않아 좋습니다. 예전에 간단하게 만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짱짱하게 고정되더군요.
이렇게 조치를 취하니 대패질이 한층 더 즐겁습니다. 사실 완벽하게 고정되지는 않고, 자세도 약간은 어정쩡한 면이 있습니다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습니다.
작업대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패날을 수시로 잘 연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패집 바닥에 양초나 왁스를 발라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대패가 움직이는데 저항을 줄여줘야 작업대에 가해지는 힘이 적어지고, 훨씬 더 안정적으로 대패질을 할 수 있습니다.
ㅎㅎㅎㅎ.
답글삭제베란다 공방의 어려움...동감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경우는 재활용장에 폐기하려고 누가 갖다 버린 압축보드 재질의 컴퓨터용 책상 (소형이면서도 무척 무거운...)을 낑낑거리고 다시 가져와 흔들리지 않고 삐걱거리지 않게 뒤에 X 자로 합판 단판으로 보강해서 작업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세 나옵니다. 심지어는 바이스도 tail 바이스(portable) 까지 부착하여 사용중입니다.
tail 바이스는 한신 클램프 1/2인치를 이용하여 자작하였습니다.
대패 작업이 가장 신나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네 테일바이스 저도 많이 부럽습니다. ^^ 마나님이 미적인 부분도 까다로워서 재활용 작업대는 엄두도 못냅니다. 작업대를 만들더라도 아마 멋진 무늬의 오크로 만들어야 허락이 날듯 합니다. ^^ 경험담 고맙습니다.
삭제집에서 조각도로 한땀한땀 장부구멍 파다가 작업장가서 끌에 망치질 해보니 딴 세상이더군요. 늘 좋은 정보 잘 읽고 갑니다.^^
답글삭제네 날이 잘 선 끌을 망치로 때리면 최고로 말끔한 가공이 되지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베란다 공방족들은 모두 같은 고민이군요.
답글삭제제 작업대 참고하시죠.
http://blog.naver.com/mrmichael/220307595640
멋진 작업대 부럽네요. 대패질에도 꿈쩍않는 위용입니다.^^ 저도 만들고 싶지만 베란다 자리 차지한다고 마누라가 극구 반대합니다. ㅡ,.ㅡ
삭제비터스윗님의 작업내용을 보면서...진심 동료를 만난듯 싶어 감동받았습니다(?). ㅎㅎ
답글삭제저도 똑같은 작업대를 쓰고 있거든요. 저도 뒷베란다에 제 아지트를 만들었으나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저 작업대조차 호사스러울 정도인데, 바닥은 물 잘 빠지라고 경사까지 되어 있는 타일이라, 톱질조차 작업대가 요동치네요.
비슷한 생각했는데, 비터스윗님의 작품을 보며 혀가 내둘려졌답니다. ^^
종종 들러 많이 배우겠습니다.
참, 저는 서양대패 어떻게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서양대패에 대한 내용도 많네요. 정말 제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군요.
좋은 대패 사고 싶으나 가격이 너무 쎄고, 미국지인 통해 구매해볼까 싶은데, 역시 돈이 문제네요.
베란다 목공..화이팅입니다.
저는 이집으로 이사올 때 베란다 확장을 필사적으로 저지했습니다. 그래서 제법 너른 저만의 베란다 공방이 확보된 거구요. 대신 깨끗이 청소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요. 대패는 저렴한 스탠리 베일로로 가도 되지만, 되도록이면 최소한 우드리버, 여유가 된다면 리닐슨 보다는 베리타스로 가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베리타스는 정말 갖고 싶지만... ㅡ,.ㅡ 전 우드리버로 만족하고 있답니다.
삭제존나무식해서 올라가서 시끄럽다고 말하면 시비거는거요1 하면서 오하려 윗층 인간이 화를 내더군요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