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마나님의 만족스런 생일을 위한 지침서

여자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 날은 명절이고,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 날은 마나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라고 하지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나님과 만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매번  생일때 마다 조금씩 아쉬워하고 서운해했던 마나님이 이번 생일만큼은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그래서 부인의 생일을 힘들어하는 남편들을 위해 이번 생일 성공담을 공개합니다. ^^

이틀전이 마나님의 42번째 생일이었고, 사흘전에 아들이 유치원에서 졸업을 했으니, 두분의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미역국으로 기선 제압하기 

남편의 생일이면 아내가 미역국을 정성스레 끓여 내옵니다.  그런데 아내의 생일이라면 누가 미역국을 끓여야 할까요?  네 바로 남편들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마나님 생일날 아침 멀뚱멀뚱하게 아침밥 받아 먹었는데,  "내 미역국은 누가 끓여주냐?"며 퉁퉁거리는 마나님을 보며 미역국이라도 내가 끓여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미역국 끓이기는 저같은 요리 문외한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일 전날 회사 근처의 마트에 들러서 가장 좋은 미역을 고릅니다.  사실 뭐 미역 비싸봤자 그게 그겁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를 위해 마나님과 아이가 잠든 시각에 미역 적당량을 뜯어내어 물에 불립니다.


미역은 물에 들어가면 부피가 엄청 증가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물에 넣으면 안됩니다.   한 줌 정도면 2인분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물에 불려 놓으면 일단은 50점입니다.  다음날 마나님보다 늦게 일어났다 할지라도 불려놓은 미역을 보며 마나님이 흐뭇해 할 겁니다. 100점을 받으려면 마나님보다 먼저 일어나서 미역국을 미리 끓이는 거지요.

불린 미역을 냄비에 넣고,  달달 볶습니다.  그리고 물을 적당량 붓고 끓이면서 조선간장으로 간을 보면 됩니다.  취향에 따라 고기나 생선을 넣기도 합니다만,  마나님은 순수한 미역국을 좋아합니다.  미역국 끓이기는 이렇게 단순합니다.

생일날 아침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면 마나님의 엔돌핀이 조금씩 분출되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할 겁니다.

생일 카드 쓰기

생일 카드는 아이와 함께 미리 써놓으면 됩니다.  문구점이나 마트에서 조그만 생일카드를 하나 사는게 그냥 A4지에 쓰는 것보다 성의있어 보입니다.


아이가 뭐라고 쓰는지 볼려고 했는데, 창피하다며 나가라고 하네요. 헐.  유치원 졸업하고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들내미의 각오가 남다릅니다.

남편도 생일 축하 메시지를 써야죠.  예전에 아들 생일 축하 메시지 아래에 "나두~"라고 썼다 핀잔맞은 적이 있습니다.  넘사스럽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같이 살자"는 굳은 각오를 표현했습니다. ^^

원래 생일카드를 저녁 파티를 하면서 주려고 했는데,  아들놈의 안달 때문에 생일날 아침에 맥없이 전달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저녁 식사

생일날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저녁 식사입니다.  너무 비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싸지도 않으면서, 분위기가 있는 곳을 골라야 합니다.  사실 제 월급통장을 마나님이 관리하기 때문에 너무 비싼 곳에 가면 돈을 허투루 쓴다고 야단 맞습니다.  그러니 적당함이 중요합니다.  사실 돈 생각 안하면 특급호텔 레스토랑이 제일 좋겠지요.

메뉴는 마나님의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됩니다.  저는 일주일 전부터 슬쩍 물어 봤습니다.  생일날 뭐 먹고 싶냐고...  마나님은 조금 생각하더니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여자분들은 분위기까지 곁들여진 정찬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소고기라도 불판에 구워먹는 스타일 보다는 스테이크가 좋은가 봅니다.  저는 그 반대인데요. ^^

힌트가 주어졌으니 검색에 들어갑니다.  맛집 검색에서 중요한 점은 꾼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쓴 시식기가 아니라,  진실이 담긴 경험담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스테이크를 검색해 보니 요즘 대세는 <드라이 에이징>이더군요.  뭐 정성스레 발효를 시켜서 아주 맛있다는데 대신 가격은 사악하더군요.

집에서의 거리, 가격대,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결정한 곳은 이태원에 있는 <부처스컷>입니다.  드라이 에이징한 스테이크를 내면서도 가격대가 적당하고,  샐러드도 맘에 들더군요.  분위기도 괜찮죠?


부처스컷(Butcher's Cut)은 정육점 주인이 따로 빼놓은 맛있는 부위를 뜻합니다.  이름은 마장동 축산시장 스타일인데,  가격대나 분위기는 딴판이네요.


따뜻한 빵이 먼저 나옵니다.   빵은 무난한데 버터가 맛있네요.  무화과가 들은 치즈가 특이하고 좋았습니다.


오늘의 메인인 <부처스컷 샘플러>입니다.  왼쪽부터 T본, 안심, 뉴욕스트립 스테이크가 한덩이씩 나옵니다.  450g이니 두세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세 종류의 스테이크를 구분하며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뉴욕스트립은 정갈한 느낌이고, T본은 와일드한 느낌입니다.  안심 스테이크는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안심 스테이크는 절로 감탄이 나오더군요.  훌륭했습니다.  마나님도 너무 맛있다고 하고, 까다로운 고기 식성을 가진 아들도 잘 먹습니다.


부처스컷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콥 샐러드>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면 싸구려 샐러드 같지만 올리브, 아보카도, 닭가슴살, 치즈, 방울토마토, 계란, 옥수수 등이 들어간 복잡한 구성입니다.   마요네즈 베이스의 소스가 아래에 있어 숟가락으로 젓으면 됩니다.

이 샐러드의 양이 많기 때문에 2~3인인 경우 샘플러와 콥샐러드 만으로도 충분한 식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 하필 졸업한 학생이 있으면 콥샐러드를 서비스로 주는 겁니다.  아들놈 그저께 유치원 졸업했는데 서비스 안되냐고 여쭤보니,  원래 안되지만 평일이라 서비스로 주겠답니다.  아들놈이 간만에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시켰으면 되었는데,  양을 몰라서 <맥앤치즈>와 아들이 좋아하는 <프렌치 프라이>까지 시켰습니다.  맥앤치즈도 괜찮은 맛이었지만...  먹으면서 계속 칼로리 걱정을 하게 되더군요.  사실 콥샐러드의 칼로리가 더 높을 것 같기는 하지만요. ^^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일년에 한번 기분내며 충분히 즐길만한 좋은 레스토랑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제 살빼기 프로젝트는 어떡하지요?

생일 케이크

원래 생일 케이크는 옥수동에 있는 <와리 베이커리>에서 맞추려고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와리 베이커리에 들렀는데... 두둥~  빵을 연구하기 위해 3월말까지 휴업이랍니다.  이런 빵집은 처음 봤습니다.  휴업을 한달 넘게 하다니...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만... 회사에서 다시 케이크 살 곳을 검색했습니다.  빠리 바게뜨에서 파는 그런 케이크는 식상하고,  크기도 커서 항상 남겨 버리거든요.

검색을 통해 고른 곳은 옥수동에 있는 <이스파이>,  유기농 수제 파이집입니다.  퇴근할 때 옥수역에 내려 언덕길을 올라 이스파이에 갔습니다.  그런데 만들어 놓은 파이가 너무 큰 거 밖에 없더군요.  큰 파이다 보니 가격도 너무 비싸고... 할 수 없이 다른 빵집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새로 생긴 옥수 리버젠 아파트 근처에 몇몇 베이커리들이 보이더군요.  저는 그 중에서 <도쿄 팡야>에 갔습니다.  거기도 생크림 케익이 있었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안되겠더군요.  그런데 롤케익이 보이더군요.  가격도 적당하고 크기도 작고 좋습니다.

인기있는 롤케익은 푸르츠 롤케익인데 너무 달 것 같아서,  <말차 쌀가루 롤케익>을 골랐습니다.  아 그런데 이 롤케익을 마나님이 아주 좋아하네요.

부처스컷에서 배터지게 먹고 와서도 이 롤케익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가 없더군요.  너무... 맛있습니다.


쌀가루가 들어가서 그런지 찰진 느낌이 아니라 백설기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리 많이 달지도 않고 깔끔한 맛입니다.  앞으로 이집 자주 애용할 것 같습니다. 


식구들이 많이 모이는 생일파티가 아니라면 생크림 케익은 낭비라고 생각됩니다.   저녁을 거나하게 먹을 계획이라면 이렇게 부담없는 케익으로 촛불끄기 행사를 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여하튼 이렇게 해서 마나님의 생일을 치렀습니다.  마나님은 최고의 생일이었다며 감탄합니다.  다음날 동네 아줌마들, 처제, 장모님에게까지 다 자랑하더군요. ^^

그런데 내 살빼기 프로젝트는?

원래 월말에는 걸어서 살빼기 프로젝트의 중간 보고를 하는데, 이번 달에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짧은 2월인데,  설날에, 마나님 생일에, 아들 졸업식까지 있어서 고칼로리와 과식의 연속이었습니다.

게다가 2월초에는 온 식구가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앓아누워 제대로 운동도 못했구요.  눈 오고, 비 오고, 게다가 이번주 초에는 난데없는 황사로 여러번 걷기를 빼 먹었구요.  이래저래 걸음 수는 줄었지만,  식사량은 더 많아져 지난 달 보다 2kg이 더 늘어 버렸습니다. ㅡ,.ㅡ


어렵게 뺀 살이 이렇게 쉽게 다시 쪄 버리니 허탈하더군요.  여하튼 날도 따뜻해지니 3월말까지 열심히 걷고, 식사 조절하여 2월달 목표량까지 포함해서 더 많이 체중을 줄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체중 리포트는 3월에 제대로 하겠습니다.

댓글 4개:

  1. 나가세에서 보고 왔습니다... 다정한 신랑이시네요
    많이 부럽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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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편은 부인 하기 나름이라고... 쿨럭 ^^ 제가 좀 잡혀 삽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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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나가세에서 넘어들어왔습니다.(삼율파 경기안양)
    제 집 컴터 즐겨찾기에 비터스윗님 블로그가 저장도어있는데...제 와이프가 이 글 보게되면....전 쫓겨나겠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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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삼율파님. 저도 마나님의 만족한 생일을 전에 열몇번을 실패했답니다. ^^ 돈이나 근사한 선물 보다는 얼마나 신경쓰느냐가 관건인거 같아요. 그 신경써주는 마음을 알아주면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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