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대한제국의 영욕이 서려있는 덕수궁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잘 안가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저희 식구에는 덕수궁이 그렇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심지어 경희궁까지 즐겨 찾았는데, 덕수궁 만큼은 기회가 없었네요.  지나가면서 늘 대한문만 쳐다 보았던거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드디어 작심을 하고 덕수궁에 가기로 했습니다.  마나님이 TV에서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얘기를 보았답니다.  직접 가서 보고 싶다고 하네요.

저는 덕수궁이 처음이었고,  마나님은 어릴때 가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겨울 덕수궁 풍경은 한적해서 더욱 분위기 있었습니다.

덕수궁 근처는 주차를 하기가 애매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에 광장시장에 들러 저희 단골집에서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여전히 맛있네요.  한국인들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시청역으로 향합니다.  대한문이 저희를 반깁니다.  저기를 들어가 본 적이 없다니...  입장권을 끊고, 안내 책자까지 삽니다.


그런데 관람 순서를 가지고 아들과 마나님이 다툽니다.  마나님은 정관헌을 먼저 보고 싶다는 거고,  아들은 안내 책자 순서대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아들의 순서에 대한 집착은 여전합니다.


기싸움에서 이긴 마나님의 의견대로 정관헌을 향해 갑니다.  거길 가려면 먼저 덕홍전과 함녕전을 거쳐야 합니다.


고종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이 함녕전에서 거처하였고, 여기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찌보면 대한제국 시기가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하는 크리티컬 포인트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 중요한 시기에 극단적인 쇄국에서 극단적인 외세 의존으로 널뛰기를 하며 국력을 소모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덕수궁은 다른 궁과 달리 규모가 작아서 몇발짝만 걸으면 전체를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과 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듯한 "정관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는 신발을 벗고 올라설 수 있더군요.   저 의자에도 앉아 보았습니다.  이곳 정관헌에서 수시로 명사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하네요.  적어도 이곳은 박제화된 문화유산은 아닌 듯 합니다.


정관헌을 나서서 옆 칸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단청을 하지 않은 큰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석어당"입니다.


이 석어당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네모 모양의 쐐기와 파여진 곳을 보수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목공하는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석어당은 이렇게 2층 건물입니다.  한옥에서 2층 건물은 그리 흔치 않죠.


석어정 옆으로 덕수궁의 정전에 해당하는 "중화전"이 자리합니다.  다른 궁의 정전들에 비해서 처마 곡선이 더 가파르고, 양식도 이색적입니다.


중화전 앞에는 중화문이 버티고 섰고,  신하들이 도열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임금의 자리가 보입니다.  건물 내부의 장식이 다른 궁에 비해 치밀하고 복잡합니다.


특히 천정에 있는 두 마리의  용 모양이 이색적입니다.


중화전의 단청과 곡선은 현란하고 아름답습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니 그만큼 건축 양식이 완성되었다고 할까요?  아니면 외국의 것과 융합된 것일까요?


"즉조당" 앞에 있는 향나무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얼마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는 걸까요?  우리 민족의 가장 치욕적인 순간을 지켜봤을 이 향나무의 속이 얼마나 쓰리고 쓰렸을까요?



중화전을 나서 옆으로 가면 유럽풍의 건축물이 보입니다.  "석조전"입니다.  석조전은 고종이 실제로 잠을 자고 생활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는데,  그 해가 바로 경술국치가 있던 해 였습니다.

일제에 의해 고종은 왕으로 격하되어 그 가족을 "이왕가"라 불렀으며,  이왕가는 이 석조전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말기에는 미술관으로 쓰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많은 훼손이 있어 그 원형을 많이 잃었습니다.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쓰이다가,  이 건물을 처음 지었던 당시의 원형을 복원하기로 결정되어 2010년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원은 2014년 10월에 완료되었고,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유럽의 거대 저택을 보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돌기둥에 새겨진 긴 세로 무늬는 플루트(flute)라고 하더군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오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문은 다 잠겨져 있습니다. 


정문 쪽으로 가보니 이렇게 관람 안내문이 있더군요.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해설과 함께 석조전 내부의 인테리어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예약을 하고 오는 건데요.


석조전 테라스를 따라 돌면서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클래식한 유럽풍 인테리어가 매혹적입니다.   실제로 마나님은 조카들을 데리고 예약을 해서 들어가 보았다고 하더군요.  남자 아이들은 지루해 한답니다.


석조전은 두개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회랑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막아 놓아서 걸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석조전 지하에는 "대한제국 역사관"이라는 전시공간이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이면서 급속도로 근대화되어 가던 혼란스런 시기의 사회상에 대한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여권을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한 코너도 있는데,  종이를 긁고 도장을 꽝 찍으니 그럴 듯 합니다.


대한제국의 여권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아들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고종은 사진이 남아 있더군요.  준명당 앞에서 대소 신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이색적입니다.  잘 드시고 운동을 안해서인지 신하들에 비하면 좀 많이 비만이시네요.


석조전을 짓고 나서 그 안을 채울 가구는 영국의 Maple사가 납품했다고 합니다.  이건 Maple사의 가구 카타로그입니다.  그 옛날에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영국 Maple사는 1870년 부터 1950년까지 수제 앤틱 가구 제작사로 명성을 떨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Maple & Co"로 검색해 보면 eBay에서 골동품 가구로 거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네요.

그런데 석조전을 복원하면서 이 Maple사의 가구들도 복원해서 갖추어 놓았다 하니,  어느 공방에서 똑같이 만들어 냈는지 참 궁금합니다.

전시관의 끝 부분에는 개화기의 생활상에 대한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서양인 의사에 의한 수술 장면도 있고,  전화 교환원의 모습도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 당시 민중들이 얼마나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라를 잃은 민중들이니까요.


석조전의 회랑을 따라 또 하나의 큰 건물이 있는데,  이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번 구경해 볼까 생각했는데,  관람료가 너무 비싸네요. ㅡ,.ㅡ


석조전 앞마당 입니다.  뒷배경에 깔린 현대식 건물,  그 앞의 조선시대 건물, 그리고 근대 유럽 양식의 석조전까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러 시대에서 건물들이 날아온 것 같습니다.  날만 춥지 않았다면 석조전 앞 마당에서 언발란스한 건물들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쉬우나마 덕수궁 구경을 마치고 나옵니다.  사실 덕수궁은 원래 이것보다 더 큰 땅 이었습니다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축소 되었습니다.  심지어 덕수궁에 딸린 건물인 "중명전"은  덕수궁 담장 밖에 있습니다.  중명전은 외교 활동을 위한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을사조약이 맺어지게 되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그곳도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아까 들어갈 땐 없었는데, 덕수궁 앞에는 수문장들이 지키고 서 있습니다.  아들에게 기념사진 찍자고 얘기했는데,  수문장들이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무서웠나 봅니다. ^^  그래도 사진 찍으려고 하면 친절하게 포즈를 잡아 주십니다.


덕수궁 와서 덕수궁 돌담길을 그냥 지나칠 순 없지요?   이렇게 해서 크리스마스날 덕수궁 산책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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