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큰 곳고 아니고 화려한 곳도 아니지만 아이와 찬찬히 꽃과 나무들을 보며 이름을 익히고 설명을 볼 수 있으며 관리도 잘 되고 있는 곳입니다.
성남시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위주로 하는 곳이지만, 일반인들도 제한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작년 늦여름에 한번 다녀 왔더랬습니다. 그때는 꽃이 필 시기가 한참 지나서 벌개미취, 수련, 부들 등을 보았는데 절정인 시기를 놓친 것 같아 참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내년 봄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고 좀 이르지만 어제 다녀왔습니다.
3월말이니 아직 본격적으로 꽃들이 피지는 않지만 사실 복수초가 보고 싶어서 서둘러 온 거랍니다. 저희 집에 있는 또 다른 식물도감에는 꽃이 피는 시기로 순서가 정해져 있는 책이 있는데 복수초가 가장 첫 페이지에 있거든요.
서울에서 성남 은행자연관찰원으로 가려면 복정사거리에서 남한산성 방향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수정로를 타고 6km 정도 가다 "은행공원, 다목적 체육관"이라는 조그만 팻말이 있는 곳으로 빠져나가면 됩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라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해서 지나치기 일쑤이니 꼭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주차는 식물원 내부에 3석 정도의 주차장이 있으나 부족하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은행자연관찰원은 아이에게 꽃과 나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아주 좋습니다. 팻말이 비교적 잘 설치되어 있고 설명도 잘 되어 있는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 위주이기 때문에 평소에 많이 보았지만 이름을 몰랐던 꽃과 나무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리 넓지 않아 한시간 정도이면 거의 다 둘러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아이들도 아빠와 걷기를 할 수 있습니다. 꼭 식물도감을 챙겨가서 식물의 이름과 설명을 찾아보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낀답니다.
봄이 왔다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서 볼게 별로 없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습니다. 은행자연관찰원에 들어서자 마자 발견한 것은 바로 할미꽃이었습니다. 낮은키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칫하면 못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벨벳 질감의 매혹적인 붉은색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어떤 물감으로 이 꽃색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꽃이 지더라도 암술은 남아 계속 자라 열매를 감싸기 때문에 마치 할머니의 머리카락 같다고 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할미꽃 뿌리는 약으로도 쓰이지만 독성이 있어 유의해야 합니다.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는게 좋겠죠.
희귀식물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얼핏보면 개나리 같기도 하고 산수유 같기도 한 생소한 꽃을 발견했습니다. 히어리라고 하네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깊은 산에서만 사는 희귀종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합니다. 빨간 꽃술이 매력적인 꽃입니다.
좀 더 가다가 구상나무를 만났네요. 구상나무는 전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우리나라 고유종입니다. 남부지방의 높은 산(지리산, 한라산, 덕유산)에서 자생하는 큰키 나무인데 수형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애용됩니다. 구상나무는 잎을 보면 전나무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잎 뒷면을 뒤집어 보면 하얀색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들내미에게 보여주니 신기해 합니다. 이 하얀색 뒷면 때문에 구상나무를 멀리서 보면 전나무와 비슷해 보이지만 희끗희끗해 보입니다.
구상나무 아래에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복수초를 발견했습니다. 정확하게는 가지복수초라고 합니다. 복수초는 채 눈이 녹지 않은 이른 봄에 눈을 뚫고 피어난다고 해서 사진가들이 아주 좋아하는 봄의 대표적인 꽃입니다. 하지만 높은 산에서만 자생해서 보기가 쉽지 않은 꽃입니다. 이른 봄에는 산에 잘 가지도 않구요.
그 복수초를 이렇게 눈으로 처음 담아봅니다. 아들내미도 너무 예쁘다고 감탄을 합니다. 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어디에 비할까요? 복수초 하나 본 것 만으로도 오늘 미션은 완수입니다. 이 강렬한 아름다움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네요.
은행자연관찰원에는 제가 좋아하는 나무인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 Dawn Redwood)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아는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이 원산지이며 은행나무처럼 공룡시대 화석에서도 발견될 정도여서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웁니다. 그래서인지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좋은 느낌의 나무입니다. 수피는 세로로 갈라져서 어릴 때는 삼나무나 편백나무와 유사해 보입니다.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굴곡없이 쭉쭉 자란다면 메타세콰이어는 울퉁 불퉁 근육질을 보여줘서 차이가 있습니다.
더 큰 차이는 메타세콰이어는 칩엽수지만 상록수가 아니라 낙엽수라는 점입니다. 가을이면 전나무 잎처럼 생긴 잎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떨어집니다. 낙엽송과 비슷하죠. 서울숲에도 꽤나 많은 메타세콰이아들이 심어져 있으며, 노을공원 인근에도 메타세콰이아 군락지가 있습니다.
은행자연관찰원을 나서는 막바지에 애기기린초 새싹을 발견했네요. 바위에 붙어 자라는 돌나물과의 기린초는 잎이 두꺼운 다육종이어서 집에서도 많이 기릅니다. 조금 다르게 생긴 돌나물은 봄에 어린 순을 초장에 무쳐먹으면 입맛을 돋구는 별미이죠.
아직 이른 봄이라 다년생 나무를 제외한 일년생 꽃들은 땅속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새싹이 이제 막 올라오고 있네요. 한달 뒤에 오면 또 제법 많은 꽃들이 우리를 반겨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한달 뒤에 다시 오자고 약속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싶은 아빠들은 에버랜드나 롯데월드같이 번잡한 곳 가지 마시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은행자연관찰원에 가보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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