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에서 아산 현충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더군요. 현충사 경내에 도착하니 널찍한 공간과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와보곤 처음이니 거의 30년만에 오는 셈입니다. 물론 기억은 하나도 안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충사에 오셨더군요. 아마도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징비록>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는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아 엄마 등에 업혀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충사 경내에 엄청 넓네요.
평택 웃다리 농악
경건한 마음으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해보려 온 여정이었는데, 가까이서 풍물 소리가 흥겹게 들립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준급의 풍물 공연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아이도 당연히 이 소리에 뭔가 하고 깨었구요. 플래카드를 보니 평택 웃다리 농악 전수관에서 나온 분들이더군요. 어쩐지 그 소리와 흥겨움이 다르다 했습니다.
평택 웃다리 농악은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한 우리나라 지역 농악 중에서도 가장 볼거리가 많고 가락의 다양성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가장 많은 구성을 차지하는 소고의 상모놀이가 장관입니다. 농악은 농사와 군대를 아울러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소고의 진풀이와 일사분란함을 보면 확실히 군사적인 의미가 강한 부분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개별 놀이가 시작되는데, 먼저 설장고입니다. 2인 설장고를 보니 저도 한때 많은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설장고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참 젊고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접시(?) 돌리기도 꽤나 재밌습니다. 돌리고 던지고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이 신나고 재밌습니다.
무동들의 놀이가 시작됩니다. 다른 농악에서 무동들은 별 역할이 없는데, 웃다리 농악의 무동들은 얘기가 다릅니다. 이렇게 어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기에도 아찔한 무동들의 묘기가 이어지더니 하이라이트로 이런 5인 대형을 만듭니다.
이렇게 한시간여 동안 평택 웃다리 농악을 감상하고 나니, 우리가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수준 높은 풍물 공연을 우연히 거의 전체를 보게 된거니까요. 마나님도 아이도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현충사를 둘러보다
현충사 입구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인데, 평택농악을 한시간 동안 구경하는 바람에 관람시간이 한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현충사를 둘러 보았습니다. 오르는 길 오른편에 운치있는 호수가 있길래 잠깐 들러 보았습니다.
모이를 팔고, 관광객이 직접 모이를 주게 되어 있어서 물이 매우 탁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물 잉어들이 가득하네요.
현충사에는 이런 모양의 반송들이 많습니다. 반송은 일반 육송과는 달리 떨기나무처럼 아래서부터 줄기가 갈라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수형이 세모꼴로 특이하지요. 이 반송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녀석으로 20~30미터는 되어 보입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계단 위로 충의문이 나옵니다. 문을 지날 때마다 절로 숙연해지는 건 왜일까요?
현충사 본관입니다. 이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명필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이곳에 숙종대에 지어지고 일제시대 중건된 원래 사당이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너무 초라하다 하여 새로 으리으리하게 지었다고 합니다만...
장우성 화가가 그린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입니다. 현충사를 들어오는 입구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제에 부역한 친일 화가 장우성이 그린 영정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더군요. 일본의 침략에 맞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군의 영정을 친일 화가가 그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우리나라에 화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이 표준 영정을 기반으로 100원짜리 동전이 만들어 졌다는거죠.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징비록>에서 찌질이 선조, 그리고 유성룡과 이순신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느 시대나 너무 잘난 사람은 당대에는 결말이 좋지 못하고, 후대에 가서나 인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를 하면서 현충사를 둘러봅니다.
이 곳이 꽤나 높은 곳인가 봅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아주 좋군요.
군데군데 이렇게 동그랗게 가꾸어 놓은 연산홍이 있습니다. 꽃까지 펴 있으니 더욱 예쁘네요.
현충사를 내려서서 왼쪽으로 가면 생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구본전이 나옵니다. 구본전이 궁금하여 그쪽으로 향합니다. 이쪽 길은 이상하게 많이 습하고 스산합니다.
아담한 구본전입니다. 원래 숙종대에 지금의 현충사 자리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순신의 가문이 쇠락하였고 이 사당을 잘 돌보지 못했나 봅니다. 게다가 일제 시대가 되면서 일본의 원수나 다름없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겠지요.
이순신 가문이 일본의 은행에 빚을 많이 지게 되어 이 현충사 땅이 모두 넘어가게 되는 안타까운 사정이 알려지자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헌금을 모아서 빚을 모두 갚고, 사당 건물까지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사당 건물입니다. 현판은 숙종의 친필이구요.
이런 뜻깊은 사연이 있는 사당 건물인데, 단지 초라하고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당을 바꿔치기 한 것은 문화재에 대한 몰이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소박한 원래 사당을 그대로 두고, 입구쪽 터에 기념관을 크게 짓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지금의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과는 달리 너무 위압적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현충사를 둘러보고 나오기 문닫는 시간까지 20분이 남았습니다. 입구쪽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을 빨리 둘러보기로 합니다.
<비격진천뢰>입니다. 폭약과 함께 쇳조각을 넣어 인명에 대한 피해를 극대화한 일종의 크레모어입니다. 심지를 몇번 돌돌 감느냐에 따라 폭파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지능형 시한폭탄이기도 하구요. 지난주 <징비록>에 바로 이 비격진천뢰로 왜군을 살상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아들이 이때 본 것을 기억하더군요.
반면에 판옥선은 평평한 바닥이어서 속도는 늘리지만 회전이 빠르고, 안정적인 화포 운용이 가능합니다. 방어에 적합한 전투선이죠. 게다가 판옥선은 소나무, 세키부네는 삼나무로 만들어져 강도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이는 목공하는 분들은 다 아는 내용이죠.
이런 구조적인 유리함이 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이 유리함을 이용하기 위해 한사코 해전만을 고집한 것이겠죠. 수적인 불리함을 전투선과 화포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해전이니까요.
거북선의 절개면인데, 판옥선의 구조와 동일한데 뚜껑을 쒸우고 용머리를 붙인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거북선은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지만, 타고있는 선원의 행동에 불편함이 있어서 돌격선으로만 소수 운용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다른 건 대충 훑어 봅니다. 아쉬워서 화포 앞에서 포즈를 잡는 아들입니다.
숙소/저녁식사/온천
첫째날의 공식적인 일정은 이제 끝났습니다. 아산 시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에 발견한 은행나무들이 장관입니다. 여기가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라고 하네요. 늦가을 노란 은행잎이 떨어질 때면 장관이라고 합니다. 하긴 마나님은 떵냄새 나는 은행열매는 어쩔거냐며 딴지를 겁니다. ^^
숙소는 <온양 그랜드 호텔>로 잡았습니다. 황금연휴 기간이지만 온양온천으로 몰리는 인파는 없는 듯 합니다. 숙소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원래는 외곽의 펜션으로 잡으려고 했으나, 아들놈이 호텔에서 자고 싶다고 해, 여기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시내에 있어 동선이 편하고 좋긴 하네요.
불행히도 온돌방은 다 나가서 트윈 침대방으로 잡았습니다. 다음날 숙소가 한옥이기 때문에, 이 날은 완전히 서양식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그래도 불편하긴 하더군요. 신발을 신고 방을 다닌다는게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닙니다.
아산 시내는 특별히 유명한 토속 음식점은 없더군요. 평이 좋은 <라이라이>라는 중국집을 갔습니다. 짬뽕 매니아인 아들의 강력한 요구로요. 마나님은 놀러와서 왠 짜장면이냐며 툴툴 댔지만요.
그런데 이집 짜장면 맛이 보통이 아니네요. 사진은 못 찍었지만 짜장면과 탕수육 맛이 일품입니다. 짬뽕은 평범한 정도구요. 어쨌든 별 기대 안했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온양온천역 바로 앞에 있습니다.
호텔에 물어보니 객실 안에도 온천수가 나온다 하더군요. 그래서 탕에 온천수를 받아다 아들과 간만에 온천욕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좁은 탕이라 아쉽더군요. 다음날 아침 새벽 여섯시에 잠이 깬 우리 식구들은 유명한 <신천탕>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온양에 여러 원탕들이 있지만 이 곳이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한 시설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도 그렇구요. 물도 좋습니다.
아산 지중해 마을
체크아웃을 하고 외암 민속마을을 갈까, 지중해 마을을 갈까 고민했는데 지중해 마을로 가기로 했습니다.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요. 그리고 곡교천 은행나무길도 다시 지날 수 있기도 하구요.
여기가 지중해 마을 입구입니다. Blue Crystal Village 라고 간판이 붙어 있네요.
삼성 SDI 탕정 디스플레이 공장이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그곳에 살던 마을 주민들이 새로 공동체를 꾸리며 조성된 곳이 바로 이 지중해 마을이라고 합니다. 새로 주거단지를 꾸미면서 지중해 연안의 컨셉을 잡은 것이지요. 1층은 거의다 상가이고, 2층과 3층은 주거지역인 주상복합이자 은평 뉴타운과 비슷한 컨셉 같습니다.
1층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있는데, 이렇게 허브를 파는 곳도 있고, 아트 공방도 있지만 대부분 음식점과 카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자리를 잘 잡지 못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제대로 정착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메인 보도도 좋지만 이렇게 집 뒤의 골목도 운치가 있더군요.
이 집이 가장 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지중해 마을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과 운치있는 카페가 몇 있으니 그걸 즐기셔도 되구요.
ZOO 커피라는 집에서 커피 한잔을 했는데, 이름같이 각종 동물 인형들이 있네요. 울 아들이 이런 인형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요. 호랑이 인형 하나 사줘야 할까요?
이렇게 아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2일차 공주를 향해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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