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봄방학 여행#3 - 공주 무녕왕릉과 한옥마을

2015년 봄방학 여행 세번째 얘기입니다.  아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지중해 마을을 들른 뒤, 다음 행선지인 공주로 향했습니다.

공주 방문의 주 목적은 무녕왕릉과 그 아름답다는 공산성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백제의 첫 수도는 풍납토성으로 추정되는 위례성이었고, 고구려에 밀려 남하한 뒤 새로 잡은 터전이 공주의 공산성입니다.

이 이어지는 역사를 차례로 밟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와 함께 한성 백제 박물관을 들렀더랬습니다.  물론 아들놈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요.

그런데 첫날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 아이가 차에서 멀미를 하며 잠들었는데, 도착하여 깨우니 왕짜증을 냅니다. ㅡ,.ㅡ  역시 계속 이동하는 여행은 아직 무리인가요?

공주는 처음 와봤는데 참 한적한 도시더군요.  살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무녕왕릉(송산리 고분군) 주차장은 이미 꽉 찼고, 인근의 종합운동장에 차를 대고 걸어 갔습니다.



송산리 고분군 모형 전시관

입장권을 사기 위해 제법 긴 줄이 널어서 있어 놀랐습니다.  사실 별로 인기가 없는 곳인 줄 알았거든요.


매표소 앞에서 지도를 보니 무녕왕릉, 공주박물관, 공산성이 모두 인근에 있네요.  무녕왕릉을 둘러 본 뒤에 점심을 먹고 공산성으로 가는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들어서자 마자 <송산리 고분군 모형 전시관>이 나옵니다.  문화재인 실제 무덤을 들어갈 수는 없으니 이렇게 모형을 만들어 둔 것이겠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무녕왕릉은 한동안 실제 들어갈 수 있게 했는데,  보존과 안전에 문제가 생겨 폐쇄를 했다고 하네요.

이곳 송산리에는 백제왕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여러기 있습니다.  홀로그램으로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네요.


이어서 <송산리 5호분>의 모형이 나옵니다.  실제 좁은 입구를 따라 들어갈 수도 있지만, 한켠에는 이렇게 똑같은 모양으로 절개해 놓은 모형이 있습니다.  벽에 있는 하얀것은 그림이라고 하네요.   실제로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아니고, 희미한 흔적만 있다고 합니다.

백제 고분군의 벽화가 어떻게 그려진건지 연구한 논문을 보니 점토로 만든 바탕에 흰색 안료를 바른 것이라고 하네요.  특별한 바인더 없이 진흙벽의 요철에 낑겨들어가는 식으로 그린 것이라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희미해진 걸로 보입니다.   목축을 주로 한 지역의 경우 우유의 카제인을 바인더로 사용한 벽화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충청도 곳곳에 아주 많은 백제 고분들이 발견되었네요.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는지 모형으로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나중에 만들어진 무덤들은 벽돌을 사용하여 아치 형태로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송산리 6호분>의 모형입니다.  이렇게 실제 크기로 만들어져서 그 규모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가지런한 흙벽돌이 가로로 세로로 배치되어 멋을 부린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역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사신도>로 사방을 지키는 동물, 즉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그린 것입니다.  중국 한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고구려 무덤에도 발견된다고 하네요.


이제 하이라이트인 <무녕왕릉>입니다.   개로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죽음을 당한 후 왕위에 오른 분이 무녕왕입니다.  위례성을 버리고 공주로 와야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나라를 다시 다잡고 군사력과 외교력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다른 무덤들은 일제시대에 모두 일본인에 의해 도굴되어 그 안의 많은 문화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무녕왕릉은 일본인들이 발견하지 못했나 봅니다.  해방 뒤 우리도 한동안 발견하지 못했는데,  1971년 송산리 고분들을 보수 공사하던 중에 우연히 이 무녕왕릉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녕왕릉은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주는 <간지석>이 발견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의 유일하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무덤 안에는 많은 부장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석수>라고 하는 것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무덤을 지키는 의미로 넣어놓은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목관, 거울, 생선뼈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1년 당시는 유적을 발굴하는 절차나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졸속으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무녕왕릉 발굴이 우리나라 고고학의 수치로 여겨질 정도라 하니 말입니다.  당시 언론에 너무 빨리 공개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현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녕왕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좀 더 크고 세련된 모양입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를 보면 확실히 예전 무덤에 비해 양식이 세련되어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기별로 조금씩 달라지는 무덤의 양식을 아이와 함께 구분하면 의미있는 답사가 될 것 같습니다.


송산리 고분군

모형 전시관을 빠져 나오면 실제 고분이 있는 언덕이 나옵니다.  조그만 언덕과도 같은 고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갑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잔디도 깔리고 조경수도 심었지만,  오래 전에는 동네 뒷산 정도로 생각해 아이들이 마구 뛰어 놀았을 겁니다.


여기가 무녕왕릉 입구입니다.  여기를 직접 와 보니 왜 이곳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5호분과 6호분 사이에 끼어 있어, 여기에 다른 무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무녕왕은 무덤을 잘 쓴 덕에 도굴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니 덕을 많이 쌓았나 봅니다.


고분군이 있는 언덕을 오르다 보니 저 멀리 공산성이 보입니다. 저기를 가야 한다고 하니,  아들놈이 힘들다고 떼를 씁니다.  ㅡ,.ㅡ   그래서 공산성은 다음에 대전에 올 때 들르기로 했습니다.


이 곳에서 공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좋은 묫자리 같습니다.


언덕 위에 오르면 아래로 내려가는 다른 길이 나오는데 호기심에 이 길로 갑니다.  운치가 있는 한적한 길입니다.


국립 공주박물관

내려가니 <국립 공주박물관>이 나오네요.  박물관 마당에는 여러가지 무덤의 모형이 나옵니다.  이런 독무덤은 왕의 무덤은 아닐테죠.  시체가 들어가기에는 작은 독이기 때문에 아마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모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담한 규모의 국립 공주박물관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무녕왕릉 등에서 발견된 진품 문화재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놈이 들어가기 싫답니다. ㅡ,.ㅡ   이래저래 공주 일정은 시작부터 꼬였습니다.


박물관 마당에 달팽이 놀이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고 또 한바탕 뛰어주는 아들입니다.  피곤하다더니...


배고픈 시간이 되어서, 미리 알아둔 공주에서 유명한 <농가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지 않았네요.  연휴 대목인데 열지 않은 것이 이상합니다.  저희 말고도 몇몇 일행들이 왔다가 허탕쳤습니다.  밤 음식 전문점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ㅡ,.ㅡ



공주 한옥마을

하는 수 없이 공주 국립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한옥마을에서 끼니를 떼우기로 합니다.  한옥마을 안에는 공주국밥으로 유명한 새이학 2호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라 식사가 안된답니다. ㅡ,.ㅡ  하긴 오후 3시였으니까요.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는 평범한 한식집에서 끼니를 떼웠습니다.  그런데 이 집도 꽤 맛있네요. 


배도 채웠으니 공주 한옥마을을 천천히 둘러 봅니다.  여기는 새로 조성한 곳인지 모두 새 건물입니다.  아직 세월의 깊이가 없어 좀 안타깝습니다만, 계획적으로 잘 지어져서 시간이 지나면 꽤 볼만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도 가능합니다. 


한옥마을에는 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민속 행사와 체험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공주와서 밤을 빼놓을 수는 없지요.  좀 비싸긴 하지만 이 군밤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밤막걸리도요.  달달하니 맛있습니다.  운전만 아니라면 즐기는 건데요. 


한켠에는 인절미 만들기 체험도 하더군요.  떡매로 내려치는 것까지 할 수 있는줄 알았는데 그냥 콩고물을 묻히는 것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뭐...  따뜻한 인절미는 정말 맛있죠. 


한옥마을 한켠에 <인조임금 공추 파천 기념비>가 있네요.  뭔 말인가 보았더니,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가 반정의 공신들에게 공을 치하했는데, 실제 군사력을 담당한 이괄을 푸대접했다고 하네요.  거기다가 이괄이 역적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이 되자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이괄의 난>입니다.

이괄의 난은 인조가 한양을 버리고 공산성으로 도망갈 정도로 위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암살할 때처럼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우발적으로 일으킨 난이라 목적 의식을 잃고 자체적으로 와해되어 버립니다.  이 와중에 정예병이었던 이괄의 군사력이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맥을 못추게 되었던 거죠.

이렇게 공정한 논공행상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꽤나 많은 예산과 공을 들여 한옥마을을 조성한 것 같습니다.  사극을 찍어도 될 정도네요.


마법천자문에 탐닉하고 있는 아들이 한자를 보니 좋아합니다.  한자 한자 읽어 봅니다. 


공주 일정은 피곤해하는 아들과 마나님 때문에 계획된 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여행 계획을 짤 때는 항상 체력 안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아쉽고 짧은 공주 여행이었지만,  고즈넉한 공주의 분위기 하나만은 정말 맘에 드는군요.  이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전주 한옥마을>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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