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종묘에 간 날, 비가 오다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이 두 곳은 할아버지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젊은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좀 어려운 곳입니다. 저도 이 두 곳은 그 앞을 지나만 가 보았지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곳이 서울의 등잔 밑 어두운 곳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서울의 중심부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만 막상 아이와 함께 가보기는 좀 꺼려지는 곳입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요. 특별히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반감이 있다기 보다는 그곳의 많은 노인분들과 이질적인 것이 어색할 뿐 입니다. 이건 마치 여자분들만 일하는 콜센터에 유일한 남자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비슷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최근 한 신문에 실린 종묘에 아름드리 "신갈나무"들이 장관이라는 기사를 보고 가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대체 종묘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탑골공원은 담장을 통해 안쪽을 얼핏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종묘는 앞에 종묘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지나가면서도 전혀 내다 볼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2014년 5월 22일 일요일 잔뜩 흐린 날, 식구들과 함께 종묘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종묘에 갈 때 유의할 점은 이 곳은 시간제 관람이라는 겁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고, 매주 토요일은 예외적으로 자유관람이 허용됩니다. 그 외 요일은 09:20 ~ 16:20 까지 한시간 간격으로 관람할 수 있고, 마지막 타임으로 17:00에 관람이 있습니다. 시간제 관람은 당연히 가이드의 해설과 함께 인솔에 따라야 합니다. 저희는 일요일에 갔기 때문에 가이드 분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종묘에 들렀더군요. 이곳 종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2012년 1박2일에서 세계문화유산 투어를 하는 중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곳 종묘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어쨌든 우리 식구와 함께한 가이드 분은 나이 지긋하신 점잖은 분으로 설명을 재밌게 잘 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종묘의 주 출입구인 "외대문"입니다. 표를 끊고 저리로 들어 옵니다. 이 곳 종묘의 건물들을 보면 다른 궁궐들과 달리 단청이 없거나 단색으로 소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설자의 설명으로는 이 곳은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곳이고 임금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엄숙한 분위기여야 한답니다. 그래서 단청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묘 내에는 이렇게 돌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길이 세 줄로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은 임금이 가는 길이고, 왼쪽은 세자가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운데는 죽은 영혼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해설자 분이 가운데 길은 밟지 마라고 하시네요.


조금 앞으로 가면 조그만 연못이 나옵니다. 가운데 섬에 구불구불한 향나무가 멋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못에 물고기가 한마리도 없습니다. 역시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궁궐의 다른 연못과 달리 물고기를 기르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곳의 나무들도 소나무와 향나무처럼 화려하지 않고 늘 푸른 나무들을 주로 심었구요.


연못 옆에는 "망묘루"라는 건물이 있는데 종묘의 단청 없는 단아한 건물 양식이 잘 드러납니다. 이 옆에는 향대청과 공민왕 신당 건물도 있습니다.


길가는 중간 중간에 거대한 신갈나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솔자를 따라가야 해서 자세히 감상하지는 못했네요. 급하게 사진만 남겼습니다. 나중에 자유관람을 올 때 다시 살펴봐야 겠습니다.


"어목욕청"이라는 건물인데 말 그대로 임금이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개를 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해설자 분은 실제로 목욕을 했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세수 정도를 하지 않았겠냐는 추측을 하더군요.


종묘의 하이라이트는 "정전"인데 정전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건물인 "전사청"입니다. 전사청은 제사 음식을 만드는 주방같은 곳이고 앞의 단은 "찬막단"이라고 해서 제수 음식을 늘어놓고 검사를 하는 곳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전사청의 오른쪽 끝 작은 출입문 안에는 "제정"이라는 우물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10년전만 해도 이곳 제정은 맑은 물이 넘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근 지하철 공사 후 수맥이 끊어져서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더군요. 해설사 분의 소망이 앞으로 물이 다시 돌아오면 관람객들에게 이 제정 물 한잔씩 돌리고 싶은거라고 하네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정전"입니다. 처음 보는 정전은 그 규모에서 입이 쩍 벌어지게 됩니다. 이곳을 흔히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하더군요. 이 정전의 길이가 101미터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긴 것이라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연상하게 하는 이 많은 기둥을은 배흘림 기둥과 민흘림 기둥이 섞여 있다고 하는 군요. 이렇게 양식이 다른 이유는 이 정전이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개축과 증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데 이 정전에 들어서자 마자 약간씩 흩뿌리던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정전을 멀리서 내다볼 수 있는 남측 건물 처마 밑으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멀리서 정전을 바라보며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전은 기둥들 뒤로 방들이 있는데 이 방 하나마다 한분씩의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셨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궁궐을 지을 때 궁궐의 동쪽에는 선조들을 모시기 위한 종묘를, 서쪽에는 농사와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지었습니다.

애초에 종묘는 7칸으로 지어졌는데 한 칸에 한 분의 신위를 모시다보니 세월이 가면서 돌아가신 임금이 많아지고, 따라서 신위를 모실 곳이 부족해 졌습니다. 그래서 세종과 명종대에 별관 격인 영녕전이 신축되고 심지어 정전 자체를 증축하여 규모를 늘렸습니다. 이렇게 유지되어 오던 정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불타버렸습니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은 종묘를 재건하였고 이후 헌종, 영조 대에 걸쳐 다시 증축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이렇게 길었던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증축되며 관리되어 온 역사적 건물입니다.

현재 정전에는 19분의 임금이 모셔져 있는데 주로 권력이 쎄고 영향력이 컸던 임금이 모셔져 있다고 하네요. 상대적으로 약했던 정종, 문종, 단종, 경종 등의 임금들은 영녕전으로 밀려났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권력 순으로 모시는 장소가 달라졌다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네요.


해설사님이 임금의 이름 뒤에 붙는 "종"과 "조"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태조와 같이 나라를 창업한 정도의 공이 큰 임금에게만 "조"를 붙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조의 경우는 찬탈한 왕위의 정통성을 강조하느라 "조"를 붙였고, 영조와 정조도 직계가 아닌 탓에 오히려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를 붙였다고 합니다. 선조의 경우도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로로 "조"를 붙였다고 하네요. 이후로도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조" 칭호가 남발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재밌는 해석이었습니다.

정전 다음에는 마지막 코스인 "영녕전"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산이 없는 관람객들은 그냥 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식구는 떨어지는 빗소리에 정전을 바라보며 묘한 분위기에 젖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약간 잦아들어 길을 나섭니다.


비내리는 이곳의 풍경도 꽤나 좋습니다. 이렇게 비오는 날 종묘 구경을 마쳤습니다. 이곳을 직접 보고 나니 서울 중심부에 숨겨진 보석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3년부터 매년 5월 초에 어가행렬 및 종묘제례를 재현하는 행사를 합니다. 올해는 세월호 여파로 어가행렬은 취소하고 종묘제례만 재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행사가 꽤나 볼만하다고 직접 볼 것을 추천하네요. 내년에도 5월초에 행사를 한다고 하니 빼먹지 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종묘는 두번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첫번째는 해설사와 함께 관람을 하면서 종묘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두번째는 자유관람을 통해 종묘에 있는 건물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아름드리 나무들도 구경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날이 좀 선선해지면 토요일 자유관람을 다시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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