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5월 16일부터 2박3일간 저희 부부의 16주년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한 짧은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총 3일 일정 중에서 이 글은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무리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특히 멀리 떠나온 여행일수록 그렇습니다. 어제 통영에서 사온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대충 떼우고 펜션 체크아웃을 하고 예상보다 조금 늦게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남해입니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으로 가다
제가 어린시절 마산에 살 때 낚시를 많이 다녔는데 거제도에 이어 가장 많이 왔던 곳이 남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동군 노량리에서 연결되는 남해대교가 유일한 다리여서 마산에서도 꽤나 멀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2003년에 삼천포에서 남해로 연결되는 삼천포대교가 생기면서 훨씬 더 가까워 졌습니다. 삼천포대교는 엄밀히 말하면 육지에서 남해 앞 작은 섬인 창선도로 연결되고 창선도와 남해가 연결되는 창선대교를 다시 건너야 합니다.
이 남해대교는 매우 아름다워서 사진 애호가들의 인기 출사지이기도 합니다. 좋은 전망 포인트를 찾아 사진을 좀 찍어볼까 했으나, 여행 마지막날이 그렇듯... 그리고 어제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다들 기진맥진한 듯 합니다. 그래서 그냥 다리를 건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의 주 행선지는 남해에 있는 "남해 편백 자연휴양림"입니다. 전국에 있는 국립 자연휴양림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곳 중 하나입니다. 그 인기의 원인은 편백나무 숲에 대한 어떤 기대와 인근의 멋진 바다와 휴양지 때문일 것입니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에 들어가는 길머리도 환상적이었는데 일찍 붉게 물드는 단풍과 늦게 물드는 단풍을 엇갈려 심은 가로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다소 먼 거리였지만 길이 너무 예뻐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훌륭하네요. 이곳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은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었습니다. 산 아래쪽에도 편백나무들이 빽빽하게 있고 키 큰 편백나무 아래로 숙소들이 나즈막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꽝꽝나무"도 보입니다. 꽝꽝나무는 생김새나 쓰임새가 회양목과 매우 비슷합니다. 하지만 꽝꽝나무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자랄 수 있어서 서울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꽝꽝나무는 잎이 어긋나고, 회양목은 마주나서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편백나무가 널려있다보니 쉽게 편백나무의 열매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콩만한 크기입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이것보다는 좀 더 크고, 화백나무는 편백나무의 열매보다 훨씬 작습니다. 이 세 나무 열매가 모양은 비슷하고 크기만 다릅니다.
정말 예약만 할 수 있다면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여름휴가를 가 볼 요량으로 처제가 이곳에 예약을 넣어 보았다는데 떨어졌다네요.
이날따라 여행 온 3일 중에서 가장 더웠고 햇볕이 강했습니다. 단단히 중무장한 마나님과 아들입니다. 산아래 편백나무 숲에서 그냥 쉴까도 생각했지만 나트막한 야산으로 올라서는 산책로가 있다고 하길래 그리고 향합니다.
이런 대규모 편백림을 조성하려면 트럭과 장비가 다닐 수 있는 임도가 필요합니다. 이곳 휴양림 산책로도 이 임도를 따라 걷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별 운치는 없습니다.
이곳에 편백나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다양한 나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주 수종은 편백나무입니다. 편백나무는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백나무는 상록수이기 때문에 새로 잎이 나는 활엽수에 비해서 잎의 색깔이 매우 짙은 녹색입니다. 그래서 숲을 바라보았을 때 짙은 색으로 보이고 원뿔 형태로 키가 큰 나무들이 편백나무들입니다.
산책로 중간에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임도는 완만한 경사라 길이 너무 길고 햇볕에 노출되기 때문에 임도를 가로질러 오를 수 있는 샛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샛길은 그늘져서 좋았는데 길은 좀 험한 편이더군요. 임도만 예상하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온 마나님이 투덜거립니다. 산책로가 완전히 극과 극입니다.
길 중간에 돌탑이 보이네요. 그런데 이 돌탑은 현실적인 용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거친 돌들이 많아서 길이 좀 불편하거든요. 돌을 한곳에 쌓아두면 길이 좀 편해지겠지요.
그늘진 숲길은 불과 10분 정도면 오를 수 있습니다. 이후로는 또 임도입니다. 그런데 길이 너무 넓어서 햇볕을 피할 수가 없고 단조롭습니다.
임도에서 바라보는 윗쪽 숲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너무 덥습니다. ㅡ,.ㅡ
얼마 걸리지 않아 전망대로 올라가는 갈림길을 만났는데, 너무 덥고 신발도 불편하고 지난 이틀간 강행군으로 지친 마나님과 아들이 올라가길 거부합니다. 불과 400미터 인데요. ㅡ,.ㅡ
깍아진 바위 절벽이 만들어 준 한뼘 정도의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기로 합니다. 어제 통영에서 사온 성게 섬유질로 만들었다는 성게빵을 꺼내어 먹습니다. 뭐 이런 쪽 그늘에서 쉬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더군요.
그래도 전망은 끝내주는 군요. 산골짜기를 따라 울창한 편백나무 숲들이 인상적입니다.
얼마 정도를 쉬고 다시 내려옵니다. 원래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은 족히 두시간은 소요될 것 같습니다. 시원한 계절에 오면 임도라 편하고 운치있는 길이겠지만, 더운 계절에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기념으로 편백나무 옆에서 사진을 찍어 봅니다. 편백나무가 한창 자랄 때는 껍데기가 홀랑 벗겨져서 나무 수피가 붉은색으로 보입니다. 이 또한 특색이 있더군요. 겨울에 본 편백나무는 그래도 껍데기가 제법 있던데요.
내려오다가 반가운 나무를 만났습니다. 사실 편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곳이면 삼나무도 자랄 수 있는데 삼나무 아름드리가 보이질 않아 좀 서운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산 아랫쪽에는 아직은 어리지만 삼나무들이 중간중간 보이더군요. 삼나무는 가시모양의 잎이라 편백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피톤치드 방출량에 있어서는 편백나무 못지 않습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연상하게 하는 "서어나무"입니다.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지요. 예전에 지리산 휴양림에서도 꽤나 많이 볼 수 있었던 나무입니다.
"굴참나무"가 나도 있다며 위세하는 듯하게 당당히 서있습니다. 이 굴참나무의 수피는 코르크가 잘 발달되어 있네요.
편백나무의 수피를 가까이서 찍어 보았습니다. 회색의 껍질과 붉은 속살이 보이지요? 편백나무가 자라면서 부피가 늘어나면 회색 껍질이 자연스럽게 벗겨진답니다. 속살의 색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책로를 올라갔다가 햇볕의 테러를 당한 터라 차라리 이 곳 산 아래의 편백 숲에 있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에 가서 돗자리를 가져다가 이곳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남은 간식을 모두 해치웠습니다.
멸치쌈밥 먹으러 가다
남해에는 몇몇 유명한 먹거리들이 있지만 가장 향토색이 짙은 먹거리라면 멸치와 관련된 요리입니다. 그 중에서 멸치쌈밥과 멸치회가 유명하지요. 여러 유명 맛집이 있지만 저희가 선택한 곳은 동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은성쌈밥"입니다.
왼쪽이 멸치회이고 오른쪽이 멸치쌈밥입니다. 멸치회는 무쳐서 나오는데 뼈가 발라져 나와서 새콤달콤하니 맛이 좋더군요. 멸치쌈밥은 생멸치를 뼈채로 조린 것을 싸먹는 것인데, 맛은 무난하지만 멸치의 씨알이 굵어지는 계절이라 그런지 멸치뼈가 좀 걸리더군요. 멸치야 워낙에 뼈채로 먹는 생선이긴 하지만 뼈가 발라진 멸치회와 같이 먹다보니 꾀가 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나님은 멸치회가 훨씬 맛있다고 하네요.
남해 독일마을
남해를 찾는 사람들이면 꼭 이 곳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방영했던 "환상의 커플"의 촬영지가 바로 이곳 독일마을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독일로 가서 간호사와 광부로 일했던 우리 동포들이 다시 귀국하여 자리잡은 곳으로 독일 건축자재로 독일식으로 집을 지어 특화된 곳이 바로 이 "독일마을"입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들머리부터 차들이 막히더군요. 사실 이럴거라고 예상을 못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마을로 들어섰고 일단 주차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주차공간이 다소 여유있는 이 곳 "크란츠리"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차를 세우고서야 마을을 좀 둘러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 워낙 비탈에 자리잡은 마을이고 햇볕이 강해서 돌아볼 엄두는 나지 않고 그냥 주변만 휙 둘러봅니다.
카페 건너편 노점에서 수공예로 만든 악세사리를 팔던데 이곳에서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반지를 골랐습니다. 어찌나 세심하신지... ㅡ,.ㅡ 아들의 여자친구는 아들을 만날 때마다 그 반지를 끼고 온다는 마나님의 전언입니다. ^^
남해 독일마을은 기대하고 오면 실망하고, 아무 생각없이 오면 좋다는 말이 있던데 딱 맞는 말 같습니다. 저희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왔거든요.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곳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잘 들어 시원하고 경치도 좋고 커피도 즐길 수 있고, 여행을 마무리짓기에 딱 좋습니다. 이곳 크란츠리의 인테리어는 매력적이더군요.
천사 날개 앞에서 포즈를 잡은 아들입니다. 아들아~ 살 좀 쪄라~ 너무 없어 보인다~
카페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참 좋습니다. 독일의 시골같은 풍경도 이색적이고 멀리 보이는 바다도 아름답습니다. 바닷가에 나무들이 주욱 심어져 있는 곳이 유명한 "물건리 방풍림"입니다. 아쉽게도 이번 일정에서는 들리지 못했습니다.
팥빙수를 시켜 먹었습니다. 오랫만에 단 걸 먹어서 그런가 맛있더군요. 팥빙수 먹으면서 멋진 경치 구경하면서 나름 럭셔리하게 한참을 즐겼습니다.
여행을 정리하면서...
이제 출발이다하고 나섰는데 창선도에서 파는 참외가 하도 맛있어 보이길래 좀 샀습니다. 가격은 저렴했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B급이고 맛이 별로더군요. 그냥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었다고 위로해 봅니다. ^^
아들이 좋아하는 우주 박물관과 공룡발자국 등을 훑는 여행이라 아들이 너무도 행복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커서도 이 여행은 두고두고 얘기할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습니다. 특히 둘째날 일정이있던 고성 상종암과 공룡박물관은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해와 통영 사이에 끼어서 별 볼일 없었던 고성이 이렇게 매력적인 곳으로 변신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여러분께도 이 여행코스 추천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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