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5월 16일부터 2박3일간 저희 부부의 16주년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한 짧은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의 선택은 철저히 아들의 요청에 의해 경상남도 고성으로 정해졌습니다. 앞으로 3편에 걸쳐 고성에 다녀 온 기록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결혼 16주년 여행 계획을 짜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결혼기념일이 되면 둘이서 짧은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강원도 속초, 전라도 완도/목포, 경상남도 통영 등 여러군데를 다녀왔고 아직도 기억이 나는 좋은 추억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난 후에는 멀리 여행가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더군요. 이제 아이도 7살이니 장거리 여행도 견딜만 하고 해서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좀 멀리 여행을 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지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정했습니다. 아들이 공룡에 관한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공룡 발자국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걸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공룡 발자국은 경상남도 고성 일대와 전라남도 여수 일대가 유명한데 고성에는 공룡박물관도 있고 해서 고성을 주 행선지로 정했습니다. 고성은 유명한 관광지인 남해와 통영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더욱 더 안성마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책을 통해서 "석회동굴"을 알게 되었는데 직접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석회동굴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 석회암 지대에 분포해 있는데 가장 유명하고 아이도 탐방 가능한 곳은 단양의 고수동굴이더군요.
그래서 여행 일정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첫날 단양을 들러서 고수동굴을 구경하고 고성으로 내려가 1박, 둘째날 공룡 발자국과 공룡박물관 그리고 통영에 잠깐 들르고, 셋째날 남해 편백숲과 인근을 둘러보고 올라오는 빠듯한 일정입니다. 이렇게 계획을 잡고 숙소와 음식점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뒤져서 차곡차곡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전날 식구들을 모아놓고 어떤 여행코스로 어떻게 갈 것이다라고 발표(?)를 했는데... 아들이 평소에 자주 보던 지도를 꺼내놓고 유심히 여행코스를 짚어 보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아빠, 여기 우주 박물관 가고 싶어" 이러는 겁니다. 보니까 그 우주 박물관은 사천에 있는 것이더군요. 사천이라면 고성과 가까우니 못갈것도 없지만... 시간이 이래저래 부족합니다. 그래서 단양 고수동굴은 코스에서 빼야 했습니다. 아들은 거기도 가고 싶다고 잠시 실랑이를 했지만요.
사실 단양을 들러 고성을 가면 너무 둘러가는 것이라 여행 동선이 영 맘에 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미리 사천 우주 박물관을 둘러보니 그리 멋진 곳은 아닌 듯 하고, 그냥 지방에 있는 조그만 과학관 정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들이 가고 싶다는데...
그리고 드디어 여행 당일이 되었습니다.
착각해서 사천 항공우주 박물관으로 가다
여행날 아침 부랴부랴 짐을 싸는데 아들이 공룡에 관한 책들을 들고 가야 된다면서 책들을 내밉니다.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을까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진작에 데리고 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천까지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네비게이션으로 사천 항공우주 박물관을 찍고 갔는데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전체 지도를 보니 비행기들 밖에 안보입니다. ㅡ,,ㅡ 이런 비행기라면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면 실컷 볼 수 있는데요.
의구심을 가지며 실내 시설인 전시관쪽으로 향합니다. 가는 중에 이렇게 비행기 내부를 볼 수 있게 해놓은 곳이 있어 올라가 봅니다. 아래 설명을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탔었던 대통령 전용기라고 하네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 전용기 치고는 크기도 작고 구식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전용기 내부에는 비행기 조종석 등이 재현되어 있고 꽤나 괜찮았는데... 내부에 온통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찬양 일색의 패널들이 붙어 있어서 눈살이 좀 찌푸려 졌습니다. 그러다가 아... 여기가 바로 경상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상도 출신이지만요. 이건 아니지 싶네요.
대통령 전용기라는 역사적 의미만을 부각시키면 될 터인데...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이런 분위기는 영 그렇더군요. 그래서 그냥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야외는 이런식으로 별 감흥없는 퇴역한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 사천은 사천 공군 비행장이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전투기들을 전시하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전에서도 서울에서도 보았던 거의 비슷한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공군기지 인근이라는 기대를 무색케 했습니다. 거기다가 이런 전투기들의 목적이 인명 살상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사천 공군비행장에서 주최한 글라이더 날리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학교별 경쟁이라는게 있어서 좀 안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한달여 만든 글라이더를 들고 대회에 나갈 걸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대회 일주일 전 선생님이 어디선가 완성된 글라이더를 사오셔서는 이걸로 대회에 참여하라는 거였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참 기분이 그렇더군요. 그냥 선생님 말에 따라 새로 사온 글라이더를 날려서 2등인가 3등인가로 입상을 한 기억이 있는데 기분은 영 개운치 않았더랬습니다.
어쨌든 전시관까지 걸어 왔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몇몇 체험 교실이 있긴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하는 것들이고, 내부는 이렇게 단순한 관람거리들 정도입니다. 크기도 별로 크지 않고 다양하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더군요.
당연히 아들도 불만입니다. "아빠, 태양계는 어딨어?"라고 불만을 얘기하는데 식은 땀이 나더군요.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다시 찾아봅니다. 그랬더니 바로 옆에 "사천 첨단항공우주 과학관"이 있더군요.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거기였던 겁니다. 이름도 비슷한 둘이 붙어 있으니 헷갈릴 수 밖에요. 부랴부랴 차를 타고 옆 건물로 옮겨 갑니다.
옆에 있는 첨단 항공우주 과학관으로 가다
과학관의 외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최근에 지어진 듯 깨끗합니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서자마자 천정에 보이는 태양계 모형이 눈길을 끕니다. 아들의 표정이 금새 밝아 집니다. "아빠 여기가 맞아~"하고 방방 뛰어 다닙니다.
과학관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주로 항공기의 역사와 원리에 대해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날이 금요일이라 그런지 정말 우리 식구가 유일한 방문객이었습니다. 수도권의 과학관이나 박물관은 아이들이 많아서 제대로 뭘 하기도 힘든데... 너무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탈것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에 대한 학습 코너인데 나름 재밌는 구성이네요.
1층은 학습 위주이긴 하지만 나름 참신한 점도 있고 괜찮았습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갑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천정에 달려있는 태양계 모형이 더 가까이 보인다며 아이가 좋아합니다.
2층으로 들어서자 마자 이런 거대한 행성들의 사진이 있어 아이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잡습니다. 책에서만 보던 행성들을 이렇게 큰 크기로 볼 수 있어 좋았나 봅니다.
2층은 체험 위주로 되어 있는 공간이더군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아이용으로 쉽게 만들어진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좋아하더군요. 그런데 너무 쉽게 되어 있어서 난이도 조절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후로 다른 과학관에서도 비슷한 걸 보았는데 거의 다 비슷하더군요. 좀 더 어렵게 만들면 인기 만점 코너가 될 것 같습니다.
지구의 큰 모형을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뿐이라 여유롭게 즐기도록 놔두었습니다.
터치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코너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곳입니다. 태양계의 각 행성들을 실사 모형으로 만든 것들인데 만지고 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아닙니다. 여기서만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태양계에 대한 동경을 채우는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 보이시죠? 화성이나 목성을 보면서 저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습니다. 좀 높이 있는 행성은 안아달라고 해서 꼭 순서대로 만져봅니다.
한동안 태양계 행성을 보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달표면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코너가 꽤나 흥미롭더군요.
월면차를 조정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그런데 울 아들은 이런 것 보다는 태양계 행성 모형이 더 좋았나 봅니다. 계속 거기로 다시 가자고 합니다.
또 다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입니다. 좀 더 어렵고 실감나더군요. 실제 전투기 조정석과 같은 모양이라 아주 좋아합니다.
태양계의 공전 모형인데 아들이 이런거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헐~
몇번이고 다시 돌아가서 구경하고를 반복했는데 지켜보는 우리가 시장해서 안되겠더군요. 그래서 겨우 과학관 투어를 마무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별자리 그림을 보고 좋아합니다.
2층에서 내려다 본 과학관 전경입니다. 수도권에 있는 과학관에 비하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나름 내용이 알차고 재밌는 것 같네요. 근처에 사신다면 들러볼 만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여행의 첫날 공식 일정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갑니다. 메뉴는 진주냉면입니다.
진주냉면을 먹으러 가다
진주냉면은 평양냉면과 더불어 냉면 역사에서 항상 언급되지요. 평양냉면이 이북식 냉면이라면 진주냉면은 남한식 냉면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진주냉면은 진주 일대를 제외하고서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도 한 두군데 있을법도 한데 전혀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더욱이 이 진주냉면이 궁금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사천에 온 김에 인근에 있는 진주에 들러서 진주냉면을 먹자고 미리 계획을 잡아 두었더랬습니다. 진주냉면의 원조는 황덕이 여사의 것인데 근래에는 아들 딸들이 이어받아 여러 집을 내었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딸이 운영하는 "하연옥"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하연옥 보다는 아들이 하는 강남동의 진주냉면 본점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잘 모르는 길을 겨우겨우 찾아갔더니... 임시 휴업이랍니다. 아니 왠 금요일에 휴업인지...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해서 급하게 차안에서 또 검색에 들어갑니다. 하연옥에 갈까하고도 생각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또 다른 아들이 운영한다는 진주냉면 들말점입니다. 진주시 외곽쪽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더군요.
처음으로 맛보는 진주냉면입니다. 경상도 음식의 특징답게 간은 평양냉면에 비해 강한 편이더군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고명으로 올라간 육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매운 후추맛이 거슬렸는데... 국물을 거의 마시고 난 뒤 바닥에 보이는 후춧가루를 보니 그 양이 엄청나더군요. 왜 굳이 후춧가루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 빼고는 괜찮았습니다. 마나님의 평은 평양냉면이 더 낫다는 군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였던 진주냉면 먹기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숙소로 들어가다
이번 여행에서 2박을 할 숙소는 고성에 위치한 "햇살가득펜션"입니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고성으로 가기 전 삼천포시가 나오길래 삼천포시장에 들러서 장을 좀 봤습니다. 펜션 주변에는 마땅한 장터가 없어서 우리가 여행 중 자주 들러야할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고성 여행은 작년 겨울에 갈려고 했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이 공룡발자국 보고 싶다고 졸라댔고 그래서 펜션까지 예약을 했었죠. 그런데 작년 겨울 유난히 바빴던 저의 일 때문에 여행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과 마나님은 단단히 삐졌죠. 그때 예약했던 펜션이 바로 이 "햇살가득펜션"입니다. 예약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너무도 쿨하게 처리해주셔서 감동 받았더랬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성을 가게되면 이 펜션에 예약하리라 마음 먹었었죠.
첫날부터 빡빡한 일정이라 펜션에는 밤 9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반갑게 맞아주시는 주인 아주머니 덕에 피곤이 절로 풀리는 듯 했습니다. 펜션은 큰 규모는 아닙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 하나인데 크기가 각각 다른 네개의 객실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중에 우리는 이층이 있는 우리 세식구에는 다소 큰 방을 잡았습니다. 이 방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층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방이야 세식구 지내기에 차고 넘칠 정도입니다.
여행을 오기 전 근처에 아침식사를 할 만한 곳이 있는지 주인 아주머니께 여쭈었는데 저희가 도착하니 이런 쪽지를 주시네요. 근처에 아침하는 곳과 그외 추천하는 식당이라면서요.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삼천포시장에서 산딸기가 좋길래 사왔습니다. 산딸기가 마침 제철이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랫만에 식구끼리 조촐하게 멀리 여행오니 기분이 새롭더군요. 아들이 맘이 설레어 잠이 잘 오지 않는지 계속 재잘거립니다. 내일 공룡 구경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고 타일러 재웠습니다. 그렇게 여행 첫째날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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