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호두까기 클램프


나른한 이른 봄의 오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를 마눌님이 깨웁니다. "아들이 빵 구워달래. 호두 좀 까줘" 하며 호두 몇 알을 내밉니다. 얼마전 정월 대보름에 부름 깨먹고 남아 있던 호두를 넣어 빵을 구워 줄 요량입니다.

보통 호두는 망치나 뻰치로 깠었죠. 그래서 망치를 찾아 들어 내리치려 하는데 갑자기 앞에 있는 클램프로 눈이 갑니다. 클램프의 압착력을 이용하면 망치로 내려칠 때의 소음과 진동, 그리고 손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 앞에 있던 클램프는 Wolfcraft의 EHZ PRO 원핸드 클램프라는 모델로 압착력이 120kg에 달합니다.

호두는 미리 소금물에 삶아 두는 것이 껍질을 까는데 편합니다. 겉껍질이 좀 부드러워져 파편이 튀지 않으며, 속껍질도 잘 벗겨집니다. 호두의 거친 껍질에 클램프 고무패드가 상하지 않도록 적당한 부재를 호두 양쪽에 끼워 클램핑을 합니다.


한번 살짝 당기니 와자작하고 껍질이 깨집니다. 노란 레버로 클램프를 풀고 다른 호두를 넣고 다시 당겨 깨고... 하나 깨는데 2~3초면 충분하네요.


호두는 호두나무의 열매죠. 그리고 호두나무는 월넛(Walnut)이라고 하드우드 중에서도 고급 수종에 속해 굉장히 비싼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자라지만 목재보다는 열매를 수확하는 용도로 쓰고 대부분 북미에서 베어진 나무들이 수입됩니다. 호두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몸에 좋은 열매이지만 천안 호두과자를 사먹지 않는 한 잘 찾아 먹게되지 않는 그런 열매지요. 정월 대보름때나 호두를 까보네요.

호두나무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세계에 분포하는데요. 그래서 예로부터 배고픈 인간들이 이 딱딱한 호두를 까기 위한 도구들을 만들었답니다. 호두까기(Nutcracker)라고 하는 이 도구들은 역사도 깊어서 호두까기 박물관도 있다고 하네요. 거기서 호두까기의 역사도 볼 수 있답니다.

아주 옛날에는 돌로 호두껍질을 깠다네요. 그러니까 망치로 호두를 깐다면 원시인 수준인거죠. 철기문명이 발달한 이후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아래 사진과 같은 형태의 호두까기가 사용되었다고 해요. 약간의 악력이 필요하겠지요. 이 호두까기는 랍스타나 킹크랩의 껍질을 까는데도 쓰이죠.


좀 더 발전되어 17세기 경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나사를 이용한 호두까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해요. 이런 형태는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 호두 껍질을 깔 수 있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호두까기 인형의 형태가 나온 건 19세기 초반 독일에서부터 였다고 합니다. 원리는 지렛대를 이용한 집게 형태의 호두까기와 동일한데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죠. 이 호두까기 인형의 뒷쪽에는 레버가 있어서 이 레버를 들어올리면 인형의 입이 쩌억 열리게 됩니다. 거기로 호두를 넣고 레버를 내리면 입이 다물어 지면서 호두가 깨지는 거지요.


생각해보시면 알겠지만 인형의 입으로 호두가 들어가야 하니 실제 저 인형의 높이는 대략 70cm 정도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호두하나 깔려고 저 큰 인형을 쓰기는 좀 그렇죠. 그래서 실제로 호두까는 용도라기 보다는 장식이나 디자인 소품으로 많이 애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는 항상 이 호두까기 인형(좀 작게 만들어진)이 자리하고 있죠.

21세기의 목공인들은 무얼로 호두를 깔까요? 네! 바로 클램프입니다. 다칠 염려도 없고, 소리도 안나고, 속도고 빠르고, 힘도 안들고, 뒤처리도 깔끔합니다. 클램프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호두깐 걸로 빵 구워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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