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마눌님의 마흔번째 생일 - 두가지 선물

어제는 마눌님의 마흔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전날 마눌님이 독감에 걸려서 병원에서 가서 링거를 맞고 왔더랬죠. 마눌님은 아이에게 독감이 옮을 수 있으니 처가로 대피를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아이마저 독감에 걸리면 저에게 큰 재앙이니 어쩔 수 없이 피난을 갔습니다.

졸지에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자게 되었네요. 항상 엄마 옆에서 자던 아이도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그리 칭얼대지 않고 할머니 옆에서 새새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엄마를 위한 생일 카드를 썼습니다. Happy Birthday라 쓰면서 꽃이며 나비며 알 수 없는 장식을 한 아이의 메시지 뒤에 저도 한자 덧붙였습니다. "나두~" 라고요.



전화로 마눌님의 증세가 많이 나아졌음을 확인하고 아이 아침을 먹인 뒤 집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국을 끓일 미역과 케이크를 사가지고 갔죠. 엄마가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니까 아이도 신이 났습니다. 유난히 더 엄마에게 치대더군요.

아이는 엄마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 집안 곳곳을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40세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TV장에 저렇게 숫자를 붙였습니다. 40이라는 숫자를 보는 마눌님의 표정은 그리 즐겁지는 않더군요. 저도 4년전에 마흔살 생일 파티를 할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불안감과 허탈감을 느낀 적이 있으니까요.


저는 마눌님를 위해 두가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첫번째는 마눌님이 아끼는 양키캔들의 터널링 현상(심지부위만 녹아 들어가는 현상)을 해결해 줄 나무 캔들 쉐이드 (Wooden Candle Shade)입니다. 오비스기(일본 오비지방의 고급 삼나무)로 원형 테두리를 만들고 스프러스 구조재를 자르고 홈을 파서 끼워 맞춘 형태입니다.


처음에는 나무와 유리관으로만 만들었는데 만족스럽게 골고루 녹질 않는 것 같아서 알루미늄 호일을 추가로 고정시켰습니다. 그 결과 만족스럽게 골고루 녹는 걸 확인했습니다. 예전에는 보기 싫게 알루미늄 호일로 크게 감싸서 향초를 태웠는데 보기도 별로 않좋았고 자칫 뜨거워 손을 데일수도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캔들 쉐이드는 나무 부분으로 거의 열전도가 되지 않아 안전하고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 없는 유일한 쉐이드이죠.

두번째 선물은 마눌님이 아끼는 두번째 아이템인 네스프레스 커피캡슐 보관대(Coffee Capsule Dispenser)입니다. 레드파인 쫄대와 자투리, 자작합판 패널로 만든 초저렴 버전이지만 나름 고민한 겁니다.


스탠드 타입으로 만들까 하다가 싱크대 위에 뭔가 널부러져 있는 걸 싫어하는 마눌님의 취향을 고려해 싱크대의 선반을 부착할 수 있는 레일에 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레일에 걸려면 오른쪽의 선반처럼 저런 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 세탁소에서 주는 옷걸이를 잘라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하중을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커피캡슐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에 커피캡슐이 몇개 없네요. 마눌님의 일갈 "니가 돈을 팡팡 벌어와야 커피캡슐을 사던가 하지~".

어쨌든 돈주고는 살 수 없는 정성이 담긴 선물을 두개나 받았으니 기쁘지 않냐며... 엎드려 절받기를 시도했지만, 마눌님은 단호하게 "난 돈이 더 좋아~". ㅡ,,ㅡ 하지만 싫지 않은 내색입니다.

생일날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쇼고기"를 사달라고 합니다. 마눌님은 파히타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결국 소고기를 먹으러 잘 아는 고깃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깃집으로 가는 20분동안에 아이는 깊이 잠들어 버립니다. 소고기 먹고 싶다는 아이는 소고기 굽는 냄새만 맡으며 코까지 골며 잤고 우리는 소고기를 오붓하게 실컷 먹었습니다. 뭐하나 빠뜨리지 않는 아들래미를 생각해서 소고기 4조각을 남겨 포장해 왔습니다.

이제 생일케이크 촛불끄기 행사를 해야 하는데 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결국 저녁 7시에 잠이 들어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12시간을 잡니다. 결국 촛불끄기는 다음날 아침에 했습니다. 케이크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샀는데 까다로운 입맛의 마눌님이 좋아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신혼때는 마눌님 생일에 제가 미역국을 끓여주곤 했는데 한동안 그러질 못했네요. 그래서 올해는 제가 끓여 줄려고 미역을 사다가 어줍잖은 솜씨로 버벅대고 있으니 마눌님이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하더니 이내 자기가 간맞추고 끓여 버립니다. 어제가 대보름이라 처가에서 싸준 오곡밥과 나물로 푸짐한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아들래미는 역시나 잊지 않고 "엄마 쇼고기는 어딨어?" ㅋㅋ. 어제 챙겨오길 잘했죠. 4조각을 구워 주니 게눈 감추듯이 먹어 버립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생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둘 만 보내던 시절의 생일 파티와 늦게 우리에게 온 아이와 함께 하는 생일 파티는 그 풍성함이 질적으로 다르군요. 우리 부부는 이제 바야흐로 "40대 중년 부부"가 되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