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초 아들내미 유치원에서 생태체험 갔다가 분양 받아온 장수풍뎅이 암놈이 있습니다.
병 속에서 석달을 애벌레 상태로 있더니 7월에 갑자기 성충이 되어 나타나 우리 식구를 깜짝 놀라게 했었죠.
어찌나 힘이 좋은지 한번 꺼내서 손 위에 올려 놓으면 붙잡고 놔줄 생각을 안해 다시 우리에 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여차하면 "부웅~"하는 소리를 내며 방안을 휘젓고 날아 다니구요. 젤리도 엄청 먹어 대더군요.
한 여름이 지날때 부터 저는 아들내미에게 장수풍뎅이를 숲에 놓아주자고 설득했습니다. 잘 설득이 되지 않다가 어떻게 납득을 하게 되어 장수풍뎅이를 데리고 서울숲에 가서 놓아준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장수풍뎅이가 좋아한다는 참나무에다가 놓아주었죠.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환경이라 좀 그랬기도 했고 이 장수풍뎅이가 부~웅 하고 날아가 버릴 줄 알았는데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제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들내미 마음이 또 바뀌어서 "아빠 새들이 장수풍뎅이 잡아 먹으면 어떡해?" 부터 시작해서 온갖 걱정을 다하더니 결국 다시 집으로 데려온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우리집에서 편안하지만 심심한 삶을 살고 있었죠.
제가 퇴근이 아주 늦기 때문에 집에 오면 아들내미와 마눌님은 쿨쿨 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수풍뎅이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톱밥 속에 숨어서 자지만 밤에는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지쳐서 퇴근하고 오면 항상 이 장수풍뎅이가 저를 맞아줬죠. 저는 사육통 뚜껑을 열고 손에 올려놓고 인사를 했습니다. 먹이도 갈아주고 간단한 청소도 해주고... 그리고 하루종일 답답했을 장수풍뎅이를 위해 일부러 자는 시간 늦춰가며 방에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신기한 듯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미끄러져 나뒹굴러 뒤집어지기도 하고 날개를 펴서 하늘을 붕~ 날아다니기도 하곤 했어죠. 그렇게 장수풍뎅이는 저와 정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매일같이 식구들 모두 잠든 시간에 30분 정도 함께 놀았으니까요.
그러다 10월 26일 아침 사육통을 보니 뒤집어진 채로 미동도 않는 장수풍뎅이를 발견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것이죠.
장수풍뎅이가 곧 죽을 것 생각해서 어디에 묻을 지 미리 생각해 두었습니다. 저와 아들내미는 장수풍뎅이를 데리고 우리 아파트 옆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가서 얕게 땅을 팠습니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숟가락으로 파느라 깊이 파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수풍뎅이를 놓고 아들내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내미 아쉬운 듯 장수풍뎅이 묻힌 곳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어찌보면 호들갑일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장례를 치른 이유는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저와 정도 많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의외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시로 개미를 밟아 죽이고 지렁이를 밟고 다닙니다. 이렇게 하찮은 벌레라도 가족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추억이 되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장수풍뎅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들내미가 묻습니다.
"아빠~ 장수풍뎅이도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
"그럼~ 하늘나라로 가지. 어떤 생명이든 다 죽고 다 하늘나라로 가."
아이는 이날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뭔가 어렴풋이 작은 인식을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즘도 가끔 이 앞을 지나가면 아들내미가 장수풍뎅이 무덤을 찾곤 합니다. 그러면서 파서 잘 있나 보자고 합니다. 참 이럴땐 난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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