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연례행사가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꽃구경을 가는 겁니다. 출장을 갔다가 모처럼 일찍 퇴근한 어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마침 카메라도 새로 샀겠다 꽃 사진이나 찍어볼 요량으로요.
집에서 응봉산이 가깝습니다. 개나리로 유명한 곳이지요. 해마다 응봉산에 개나리가 절정일 때 응봉산 개나리 축제가 열립니다. 올해 2014년에는 4월 4일 금요일에 하네요. 이날 오셔서 인파를 즐기셔도 좋고, 한적한 개나리 구경을 하려면 이날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3월 25일에 오른 응봉산은 개나리 꽃들이 아직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응봉산 북사면에서 가장 활짝 핀 곳을 골라 찍어 보았습니다.
개나리는 한반도의 고유종입니다. 즉 봄이면 산에 들에 길가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쳐진 가지에 달린 노란 꽃들의 향연을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나리의 학명도 Forsythia Koreana입니다. 외국에서도 개나리 종자를 들여가 심기도 하는데 주로 꽃꽂이 용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개나리가 아직 힘을 쓰지 못하는 3월말 경에 응봉산을 물들이는 꽃들은 바로 산수유입니다. 산수유는 제 또래의 어른들이라면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를 통해 익숙한 나무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날 스모그가 잔뜩 끼어 있어서인지 응봉산 정상에 인적은 드물었습니다. 넓은 정상의 마당에 아이가 쪼그려 앉아 나무 막대기로 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 우리집, 응봉산, 남산, 하남 할머니 집 등을 지도로 그리고 있네요. 이렇게 혼자 빠져 놀고 있을 때 어른들은 멀리서 지켜봐 줘야 합니다. 춥다고 내려가자고 재촉하지 말고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그냥 두고 봅니다.
물 한잔 마시고 응봉산을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한번도 내려가 보지 않은 옛길을 선택 했습니다. 옛길은 나무계단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돌계단이어서 아이의 발이 무척 아팠나 봅니다. 자꾸 징징댑니다. 미리 길을 알아보지 않은 제 불찰입니다.
내려가다 반가운 살구나무를 만났는데 아직 꽃망울이 채 터지지 않았습니다. 갓난아기를 보는 듯 너무 예쁘고 귀엽습니다. 살구나무 꽃을 보면서... "아들아, 우리 집 앞 살구나무는 볕이 좋아서 활짝 피었겠다. 어서 보러가자" 라고 재촉했습니다.
매일 차를 세워놓는 주차장 앞에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있는데 이렇게 꽃이 활짝 피었네요. 저는 벚나무 꽃보다 붉은 꽃잎의 강렬함 때문에 살구나무 꽃을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활짝 피었는데도 모르고 지나쳤었네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아들이 아빠 배가 많이 나왔다고 한 걱정을 합니다. 주로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따라 하는 것이지만... 그래서 아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마다 같이 산에 가기로요. "아빠 뱃살 빼려면 아들이 도와줘야 하잖아?" 라고 설득 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집에서 죽치고 있거든요. 아빠와 아들의 약속이 잘 지켜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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