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전자기적인 원리를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의 계량기가 쓰였는데 아래와 같은 모양입니다. 예전 어머니들이 이 전력량계의 원판이 빨리 돌면 전기 많이 쓴다고 화들짝 놀라곤 했었죠.
예를 들어 10월 1일에 저 숫자가 1234였고, 11월 1일에 2345 였다면 10월 사용한 전기 사용량은 2345 - 1234 = 1111 kWh가 되는 것이죠.
이런 아날로그 방식의 전력량계는 검침원이 직접 육안으로 수치를 확인하고 기록해야 해서 예전에는 검침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요즘은 스마트미터(Smart Meter)가 사용됩니다. 이 스마트미터는 정밀 ADC(Analog Digital Converter)를 이용하여 직접 전압과 전류를 센싱하여 전력을 계산하고 이를 시간으로 적분하여 전력량을 산출합니다. 그리고 이를 몇가지 통신 방법을 통해 자동으로 중앙서버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집에 혹은 사무실에 전력량계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대부분 각 층에 있는 배전반에 전력량계들이 모여 있고,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접근이 통제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용하는 전력량을 이 전력량계가 계속 감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전기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다음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세대별로 문앞에 있던 아날로그 전력량계의 경우 원판이 도는 속도로 전기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요. ^^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력 수급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편리한 시스템 에어콘의 보급이 늘어나고 싼 전기료로 인해 전기 난방기기들이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으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초고층 건물과 산업 발전으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공장 설비들이 급증하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기 공급의 큰 축인 원자력 발전소 몇몇의 설계수명이 다되어 가는데다가 원전비리 및 사고 등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전력망의 안정성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이 중요해 졌습니다. 이를 위해 기존 전력망에 IT기술을 접목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기술들을 통틀어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라고 합니다. 전기라는 것이 다른 산업과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기술 분야라 하겠습니다.
스마트그리드 기술은 크게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공급 측면에서는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효율적으로 발전소를 운영하고 송/배전 효율을 높이고 장애를 미리 방비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기술들이 포함됩니다.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를 아껴쓰고 고르게 쓰도록 하는 기술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전기를 아끼려면 내가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 그래서 Energy Awarenes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얼마를 쓰는지 알아야 아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물론 한국전력에서 빌딩과 공장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보여주는 웹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가정이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는 아직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 실시간으로 안다고 해도 총량만 알 수 있다면 전기 절약을 위한 행동에 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어디서 많이 쓰는지 알아야 그것을 줄이니까요. 예를 들어 아래 차트는 미국의 가정에서 어떤 활동에 전기를 많이 쓰는지 분석을 한 것입니다. 이런 분석을 프로파일링(Profiling)이라고 하는데... 자 보시죠.
에어콘, 냉장고, 난방, 온수, 조명, 빨래 건조기, 냉동고, 환기팬, TV, 전기렌지, 식기세척기, 전기오븐, 전자렌지, 컴퓨터, DVD, 세탁기 등의 순서대로 전기를 씁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가정에서 쓰는 전기를 줄이려면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부분인 냉난방을 효율적으로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프로파일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 가전기기, 냉난방 설비마다 따로 전력량계를 달아서 계측하고 집계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기존의 전력량계들은 전기선을 직접 연결해야 하는 방식이라 가정에서 쉽게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한 전력량계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가전 소품으로서의 전력량계 - Kill A Watt
가정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계는 여러군데서 제품이 나왔습니다만 Proof of Concept 개념의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많이들 사라졌고 현재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곳은 몇군데 없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P3 International사의 제품들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P3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는 재밌는 아이디어 소품들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로봇청소기, 홈베이킹, 미용보습기 등 특이한 가전소품을 만드는 모뉴엘과 비슷한 회사입니다. P3 International에서 만드는 것들은 주로 에너지 절감을 컨셉으로 하는 제품들인데 편리한 전력량계, 대기전력 차단기, 태양광을 이용한 소품들, 두더지, 사슴, 들쥐 등의 야생동물을 쫓는 제품들, 온습도계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전력량계와 대기전력 차단기에 대해서 제품군을 살펴 보겠습니다.
P3의 전력량계는 Kill A Watt라는 제품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모델인 아래 사진의 Kill A Watt는 간편하게 벽면의 콘센트 구멍에 꽂을 수 있으며, 자체에 콘센트 구멍을 가지고 있어서 전기 소비량을 측정하고자 하는 가전제품을 바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일부 저가형 제품과 달리 Kill A Watt는 전력량 누적치(kWh)외에도 전기 품질과 관련된 전압, 전류, 유효전력, 주파수, 피상전력 등의 정보를 0.2% 정확도로 제공하는 꽤나 괜찮은 계측기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이 제품은 현재 $30 정도의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비슷한 제품으로 Power Monitoring for Dummies라는 재밌는 것도 있는데 요금 계산 기능이 추가되고 가격은 $50에 팔립니다.
이들 제품들은 전기 사용량을 알려면 반드시 콘센트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알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콘센트가 가전제품에 의해 가려져 있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좀 불합리 하지요. 그래서 Kill A Watt Wireless라는 제품도 만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콘센트가 있는 흰색 센서를 콘센트 구멍에 꽂고 가전제품을 연결하는 것은 같습니다만, 이 센서로부터 전기 사용량을 무선 (아마도 Zigbee인 듯 합니다)으로 전송받아서 디스플레이 해주는 조그만 모니터가 있습니다. 이 모니터 하나가 8개의 센서를 커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통신은 916.5 MHz ISM 대역을 쓴다하니 IEEE 802.15.4 방식을 쓰는 것 같습니다. 가격은 $70 정도입니다.
컨센트가 하나만 있는 것도 불편한 사항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멀티탭 처럼 10개의 전원구가 있는 Kill A Watt PS-10 이라는 제품도 있습니다. 가격은 $90 정도입니다.
대기전력 차단 제품 - Save A Watt
Kill A Watt가 가정의 콘센트에 꽂아서 가전제품의 전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제품이라면 Save A Watt 제품군은 가전제품의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대기전력은 영어로 Standby Power, Vampire Power, Phantom Load, Leaking Electricity로 불리는데 흡혈귀처럼 유령처럼 알게 모르게 새어나가는 전기를 의미합니다.
어느 집에나 있는 TV를 생각해보면 전원선이 항상 콘센트에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TV를 켤때 전등 스위치처럼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리모컨으로 켭니다. 이는 TV가 리모컨 IR(적외선) 신호를 수신하여 처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살려두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런 기능들이 약간의 전기를 소모하게 되는데 이를 대기전력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나오는 가전제품은 대기전력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리 큰 수치가 아니지만 좀 오래된 가전의 경우 대기전력이 10~15W 정도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one Watt Initiative (1와트 운동)에 참여하여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잇습니다. 특히 EU는 2010년 이후로는 대기전력 1W 이하인 제품만 생산할 수 있도록 제한하며, 2013년 이후로는 0.5W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작은 전력인 수 W에 대해 왜 민감하나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가정에서 쓰는 전기에너지 중 8~11% 정도가 대기전력이라고 하니 무시 못할 정도입니다.
대기전력을 차단하려면 안쓰는 가전의 전원선을 콘센트로부터 뽑으면 됩니다. 그런데 참 귀찮죠. 그래서 대기전력 차단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제품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들 제품들은 연결된 가전제품의 유효전력이 특정 기준 이하가 지속되면 대기전력이라고 판단하고 릴레이(Relay, 계전기)를 제어하여 전원을 차단하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장치에 몇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릴레이를 제어하여 대기전력을 차단을 했지만 그 가전제품을 다시 사용하고자 할 때 어떻게 다시 전원을 공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전원을 다시 넣는 버튼을 만드는 겁니다. 좀 더 지능적인 장치들은 TV리모콘에서 나오는 IR신호를 감지하거나 모션센서를 이용하여 사람의 움직임이 있을 때 전원을 넣기도 합니다.
두번째 함정은 릴레이 자체도 전기를 소모한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릴레이는 코일과 스위치로 구성되어 있는데 코일에 전기를 공급하면 스위치가 당겨져서 전원을 끊거나 전원을 연결하게 됩니다. 즉 전기를 연결하거나 차단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전기가 소비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사용되는 릴레이는 NO(Normal Open)타입과 NC(Normal Close)타입이 있습니다. (Single Pole Single Throw, SPST인 경우)
아래 그림은 NO타입의 릴레이입니다. 코일에 전원을 인가하지 않으면 스위치는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오른쪽 그림처럼 코일에 전원이 인가되면 전자석의 힘으로 스위치를 당겨 회로가 닫히게 됩니다. 즉 NO타입의 릴레이를 사용할 경우 대기전원을 차단할 때는 전기를 소비하지 않지만, 가전제품을 사용할 경우에는 코일에 부가되는 전기만큼을 더 사용하게 됩니다.
다음은 NC타입의 릴레이입니다. NC타입의 경우 코일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스위치가 닫힌 상태입니다. 코일에 전기가 공급되면 스위치를 당기게 되어 회로가 오픈됩니다. 그러므로 NC타입의 릴레이를 대기전력 차단장치에 사용하게 되면 대기전력 차단시에 부가적인 전기를 더 쓰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켜져있는 시간보다 꺼져있는 시간이 많은 가전제품에 사용하는 대기전력 차단장치에는 NO타입의 릴레이를 쓰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판매되는 일부 대기전력 차단장치가 NC릴레이를 쓰는 경우가 있더군요.
사실 가장 이상적인 릴레이는 랫칭 릴레이(Latching Relay)입니다. 랫칭 릴레이는 오픈이냐 클로즈냐의 상태를 바꿀때만 잠깐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를 공급하지 않으면 마지막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래칭 릴레이는 가격도 비싸고 부피가 커서 이런 조그만 장치에 사용하기에 적절치는 않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P3에서 만드는 장치들을 살펴봅시다.
Save A Watt TV Standby Killer 제품은 TV의 대기전력을 차단하는데 최적화된 것입니다.
사용법은 간단한데 TV의 전원선을 이 제품의 콘센트 구멍에 꽂기만 하면 됩니다. TV가 대기모드로 들어가면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게 되며, 다시 TV를 켜고자 할 때는 리모콘으로 아무 버튼을 누르면 내장된 IR센서가 이를 감지하여 TV의 전원을 다시 연결해주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이 제품은 NO릴레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기전력이 차단된 상태에서는 0.08W 이하의 전기를 사용하고, 가전에 전기가 공급되는 상태인 경우에는 0.5W 정도를 부가적으로 소비하게 됩니다.
Save A Watt Edge 제품의 경우 모션센서를 내장한 형태입니다.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원리는 동일하며 사람이 집에 들어와 움직임이 모션센서에 감지되면 자동으로 가전제품에 전원을 공급하게 됩니다. 아래 사진의 제품은 전기 사용량을 보여주는 LCD까지 달려있는 모델이고, 단순히 모션센서만 달린 모델도 있습니다.
Save A Watt Phantom Power Indicator 제품의 경우는 릴레이를 내장하지 않아 실제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기능은 없지만 대기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대충 표시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별 쓸모없는 제품같기는 합니다.
Kill A Watt의 개선
Kill A Watt는 타사 제품에 비해 잘 타게팅된 기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꽤나 인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으로 대두되는 것이 계량된 데이타를 외부로 빼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오로지 정보는 내장된 LCD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 계량 정보를 어떻게든 입수하여 PC에 저장할 수 있다면 차트도 그리고 분석도 해서 에너지 절감을 위한 전략을 더 잘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아쉬운 점을 해결한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Limor라는 여성 엔지니어가 Tweet A Watt이라는 이름으로 Kill A Watt 제품을 개조하여 계량정보를 취득하는 방법을 구현하였습니다.
그녀는 Kill A Watt를 분해하여 전압과 전류가 ADC로 들어가는 접점을 Zigbee 통신 모듈인 XBEE 모듈의 ADC에 연결하였습니다. XBEE는 ADC입력을 읽어서 자동으로 전송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PC가 여러개의 XBEE 모듈로부터 계량치를 전달받으면 전압과 전류를 곱해서 유효전력을 구하고 이를 시간으로 적분하여 전력량을 산출하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각 섹터의 전기 사용량을 집계할 수 있습니다.
이 집계된 데이타를 이용하여 각 섹터별로 사용한 전기 사용량을 아래 차트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XBEE의 통신 속도와 ADC의 정밀도가 시원찮기 때문에 오차가 제법 많을 걸로 예상이 됩니다. 이런 가정용 전력량계에서 정식으로 데이타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그런 솔루션이 있는지 더 찾아보겠습니다.
여러가지 중요한 정보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답글삭제Kill-A-Watt 220V version 판매처 혹시 알고계시나요?
제가 검색해 본 결과로는 Kill-A-Watt는 미국용 길쭉이 모양에 110V만 지원하는 모델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기능의 국산제품(이지세이버 등 검색해보시면...)들도 있고, 요즘은 샤오미 같은 중국업체들도 비슷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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