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주 즉흥적인 짧은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TV에서 요즘 대게를 먹는 장면이 나왔나 봅니다. 장모님께서 이를 보고 대게 먹으러 가자고 장인어른을 졸랐고 마눌님이 합세해서 거드는 바람에 번개 여행이 성사되었습니다.행선지는 묵호항. 대게는 울진이나 영덕도 유명하지만 서울에서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묵호항 정도면 갈만한 거리라 선택했습니다. 묵호는 강릉에서 30분 정도 거리라 서울에서 2시간 30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막힐까봐 토요일 아침 7시에 출발했습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많기는 했지만 그리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잠시 들러서 아침을 먹었던 횡성휴게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더군요. 스키에 겨울 등산 인파까지 겹치면서 난리도 그런 난리통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10시 30분 경에 강릉에 도착했고 점심 식사로 대게를 먹기에는 좀 일러서 강릉 선교장을 잠깐 들렀습니다. 선교장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겠습니다. 선교장에서 1시간 정도 구경하다가 묵호항으로 갔습니다. 으레 그렇듯 어촌의 항구나 시장이라 해봐야 손바닥만하죠. 그런데 방송 여파인지 엄청난 차량들이 밀려 들더군요.
당연히 어시장 주차장은 꽉찼고 저희는 하는 수 없이 300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걸어 갔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묵호항 부둣가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수산물 판매센터가 있습니다. 제가 담은 사진은 절반만 담은 것인데 사진에 보이지 않는 오른쪽은 주로 물고기 횟감을 파는 곳이고 사진에 담긴 왼쪽 편은 주로 대게를 취급하는 곳들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할머니들이 횟감을 저렴한 가격에 손질해 주십니다.
여기가 횟감을 주로 다루는 곳입니다. 씨알이 굵은 자연산 도다리가 몇 보여서 군침을 삼켰지만 오늘의 목적은 회가 아니라 대게라 그냥 참았습니다.
대게를 파는 가게는 어림잡아 스무군데 정도 됩니다. 대략 저렇게 한 대야 단위로 파는데 싼거는 5만원에서부터 비싼거는 20만원 정도까지 가격대 더군요. 물론 싼거는 크기가 좀 자잘한 것들이고 비싼 대야에는 보기에도 알차 보이는 놈들이 들어 있습니다. 가게를 순서대로 돌아다니면서 대충 가격대를 물어보니 입구쪽이 좀 비싼 편이고 안으로 들어갈 수록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 대게의 씨알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느 가게에서 사야하나 멘붕에 빠져있는데... 근처에 사는 현지인 듯한 아주머니 두 분이 대게를 이 집 해영호에서 사는 걸 보고 그냥 따라 샀습니다. 현지인이 찾는 곳이라면 품질 하나는 괜찮겠다는 막연한 기대로요. 대게 파시는 이모님 인상이 믿음직하고 서비스도 화끈하게 주시더군요. 15만원 짜리를 샀는데 세마리를 더 얹어서 담아주셨습니다. ^^
어른들이 대게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아들이 심심해 해서 뒷편의 부둣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몇몇 어르신들이 추운 날씨에 부둣가에서 게잡는 그물을 손질하고 계시더군요. 아들에게 "이렇게 추운데서 고생하시는 저 분들이 잡은 게니까 맛있게 먹어야 해~"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뚝뚝하게 일하시는 어르신들이 좀 무서웠나 봅니다. ^^
묵호항은 대게를 사서 먹는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활어센터에서 대게를 사면 어디 어디를 가라고 안내를 해 줍니다. 저희가 안내받은 곳은 길 건너에 있는 묵호항 횟집입니다.
대게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횟집에 들어서니 봉지를 받아 드시고는 손님이 많아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걱정하시더군요. 횟집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고 적당한 정도의 청결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음식 내놓으시는 이모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더군요. 이 묵호항에는 횟감이나 대게를 사오면 이렇게 회를 떠주거나 대게를 쪄주는 식당들이 몇군데 있어서 골라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가게마다 동일한 비용을 책정해서 받더군요. 아래 비용표가 2014년 1월 현재의 가격입니다.
우리 일행의 경우 대게를 찌는 비용 10,000 + 어른 4인 2,000*4 + 게탕 10,000 + 게장비빔밥 2,000*2 + 공기밥 1,000 + 맥주 4,000 해서 총 37,000원의 비용이 들었네요. 합리적인 가격으로 생각됩니다.
여하튼 앞서 횟집 이모님이 예고한 30분을 좀 더 넘겨서 약 4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가 기다리던 대게찜이 나왔습니다. 이 대게찜이 나오기 전에 옆 테이블에서 대게 먹는 걸 지켜보느라 정말 곤욕스러웠습니다. 배도 고프고요. 횟집이라는 간판이라 간단한 횟거리 없냐고 여쭤봤더니 어시장에서 사오면 바로 떠준다고 합니다. 다시 나갔다 오기 귀찮아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짜쟌~ 하고 우리 대게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잡담하면서 기다리던 우리 일행은 순간 말이 없어지면서 모두 대게에 집중합니다.
사실 예전에 대게를 서울에서도 몇번 먹어봤는데 그때는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신선도의 차이더군요. 이날 묵호항에서 먹었던 대게는 정말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대게는 2월이 되어야 살이 꽉차고 1월인 지금은 80%정도만 찬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리만 먹었는데도 허기는 채울 정도가 되고 두마리를 먹으니 배가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이후로는 그냥 맛있어서 배 두드려가면서 먹은 겁니다. ^^
대게찜을 먹고 대게탕과 게장비빔밥도 먹었는데 사진에 못담아서 아쉽네요. 이 둘도 너무 훌륭했습니다. 대게의 내장은 꽃게와 달리 거무틱틱해서 색감도 별로고 비린내도 좀 많이 나는 편이라 좀 꺼려집니다. 하지만 참기름과 김을 넣고 쓱쓱 비비니 정말 훌륭한 맛이더군요. 그리고 대게로 찐 게탕도 꽃게와는 다른 시원한 맛이 느껴져서 일품이었습니다.
두어시간 정도의 대게와의 혈투를 마치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내려왔습니다. 이제서야 주변 풍경이 보이더군요. 너무 가열차게 먹었나 봅니다. 그런데 묵호항 어디를 가도 이렇게 생선을 꾸덕꾸덕 말려놓은게 보이더군요. 제가 이 꾸덕꾸덕 말린 생선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도 좀 샀죠.
대게는 배달시켜서 집에서 직접 쪄 먹어도 됩니다. 앞서 소개드린 해영호 등의 대게 판매처에 전화를 해서 주문하면 되고 받은 대게는 아래와 같이 요리하면 된다고 합니다. 찔 때 냄비뚜껑을 절대로 열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곳 묵호항에 직접 와서 먹는게 더 운치가 있고 맛있겠죠?
묵호항에는 볼만한 것들이 몇개 있는데 우리 일행은 묵호등대를 가기로 했습니다. 묵호항은 바닷가에 절벽이 있어 높은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절벽에 등대가 하나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유인 등대입니다. 묵호 어시장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의 전망이 아주 끝내줍니다.
묵호등대입니다. 멀리서 보면 아주 작아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제법 높네요. 3~4층 높이인 것 같습니다.
묵호등대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고 아들이 좋아합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구요. 그러고보니 묵호항과 울릉도는 거의 같은 위도에 있네요.
얼마전에 아들이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서 저에게 보여 주었는데 대한민국 옆에 울릉도와 독도를 아주 큼지막하게 그렸더군요. 그걸 실제로 보니 너무 좋았던거죠.
등대를 올라서면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원래 절벽이라 해발이 높고 등대 높이까지 있으니까요. 날이 좋으면 시야가 굉장히 좋을 듯 합니다. 불행히도 이날은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라...
계단은 이런 나선형 계단입니다. 멋있어서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대관령 스노우파크를 들러서 눈썰매도 좀 타볼라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좀 피곤해 하셔서 그냥 서울로 직행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 아침 7시에 나섰으니 딱 12시간의 짧은 당일치기 여행인 셈입니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웠던 그러나 너무 배가 불렀던 묵호항 여행이었습니다. 2월에 대게 살이 꽉 차 오르면 다시 오자고 결의는 했는데 그리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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