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약현성당과 정릉숲 산책


이 글은 2014년 10월 26일 <약현성당>과 <정릉숲> 산책을 한 기록입니다.

마나님은 카톨릭 신자입니다.  보통 일요일이면 동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립니다만...  이번 주에는 특별한 이벤트를 제안했습니다.

지난 8월에 방한했던 플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시복미사를 집전했는데,  그 전에 서소문에 있는 약현성당에 먼저 들러 참배를 하고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더랬습니다.

약현성당

그 생각이 나서 마나님께 약현성당에 가볼래?라고 물었는데... 좋답니다.  가보고 싶었다고 하네요.  약현성당은 서소문공원 근처에 있는데,  서소문공원이 많은 초기 카톨릭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약현성당이 이곳에 있는 이유도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성당은 1892년에 완공된 우리땅에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교회라고 합니다.  심지어 명동성당 보다 먼저 지어진 겁니다.  그런데 100년이 넘는 오래된 건물인데도 새것 같아 보입니다. 알고보니 어떤 사연이 있더군요.  넓지 않은 부지이지만 건물이 몇채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11시에 미사가 있는데,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니 아주 많은 분들이 계셔서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정도더군요.  하는 수 없이 제일 뒤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는데,  아이가 답답하다고 징징대기 시작합니다.   앞도 잘 안보이고 해서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미사 중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천주교가 우리 사회를 위해 해왔던 많은 선행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세례를 받았구요.  마나님은 아이에게 종교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하네요.

본당 바로 옆에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이 있습니다.  순교 전시관이라 아이와 함께 보기 좀 꺼렸지만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표현은 많이 순화되어 있더군요.



1998년에 발생한 약현성당 화재에 대한 설명이 있네요.  어떤 노숙인의 방화였다고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일부 소실된 것을 지금은 새로 복원한 상태인데... 그래서 100년이 넘은 성당이 새것같이 깨끗했던 거였습니다.


조선말 자생적으로 발생한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이 이렇게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는 믿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였고,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도 그 역사가 참으로 짧다는 걸 상기시켜 줍니다.


미사가 끝나고 룰루랄라 마나님과 아이가 노래를 부르면서 내려가는데,  미사를 마치고 나오신 신부님이 마나님께 "노래 잘 하십니다~"고 덕담을 건네더군요. ^^


이곳 약현성당은 순교 성지이고,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담긴 곳이라 외지에서도 많이들 온다고 합니다.  다른 동네 성당에 가는게 좀 거시기 한데 적어도 이 약현성당은 외지의 신도들도 크게 환영하더군요.  가끔씩은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성당에 가는 것이 아이에게도 마나님께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다른 곳도 계속 둘러볼까 합니다.

삼청동 눈나무집에서 맛있는 점심

배가 무지 고팠습니다.  이날 일정은 모두 즉흥적이었는데 점심도 즉흥적으로 삼청동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점심때 삼청동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더군요.   유명하다는 음식점마다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저희가 삼청동에서 주로 가는 집은 <눈나무집>입니다.  이 집은 다행히 삼청동 끝부분에 있어 줄을 서고 있지는 않더군요.


눈나무집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저희 부부가 와서 가끔씩 먹던 곳인데, 아이는 이곳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집의 주 메뉴는 김치말이국수와 떡갈비입니다.  여전히 맛있더군요.


아이가 있으니 좋은 점은 식당가면 메뉴 하나를 더 맛볼 수 있다는 겁니다.  김치볶음밥과 빈대떡을 추가로 시켜 먹었는데... 네가지 음식이 모두 다 훌륭했습니다.  특히 빈대떡은 마치 얇은 피자와 같은 모양인데 정말로 코리안 피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외양은 이국적인데 맛은 빈대떡 맛입니다.  이날 먹었던 것 중에 가장 감동이 왔던게 바로 이 빈대떡입니다. 


신덕왕후가 묘셔진 정릉

맛있게 점심을 먹고 어딜 가나 잠깐 고민했는데,  예전부터 가고 싶다고 리스트에 올려 두었던 <정릉숲>이 생각났습니다.  삼청동에서 북악산길로 올라타면 금방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길은 풍광이 아주 끝내줍니다.  서울에서 이런 산속 드라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정릉으로 향하는데 어째 길이 이상합니다.  좁은 골목길을 꼬불꼬불 들어가 마치 1970년대를 온 듯한 풍경 끝에 정릉이 있더군요.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갑니다.  매표소 앞에 약간의 주차공간이 있지만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대부분의 왕실 가족묘들은 여러개가 모여있는데 이곳은 <신덕왕후>의 묘 하나 밖에 없습니다.  신덕왕후가 누구냐 하면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입니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은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고,  신덕왕후와 결혼한 후에 조선을 세웠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조선의 첫 왕비가 됩니다.  이렇게 따지면 릉의 격이 상당히 높아야 하겠지요.

매표소를 들어서면 앞에 보이는 정자각까지 편안한 길이 이어집니다.  잘 가꾸어진 오래된 나무들이 참 인상적입니다.  북악산이 앞에 가리는 곳이라 이곳은 그늘진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나무들의 키가 큽니다.


홍살문 바로 앞에 있는 이 거대한 소나무는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아랫부분은 잔가지 하나 없이 단정하여 일반적인 소나무와는 판이하게 수형이 다릅니다.  이렇게 기울어진 상태로 얼마나 더 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깝네요.


이곳이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입니다.  새로 복원한 건물이라 고풍스런 맛은 없습니다만 조선의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정자각 뒤로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신덕왕후가 모셔진 능이 있습니다.  올라가 보지는 못하지만,  올라가라 해도 엄청난 경사라 엄두가 나질 않네요.  사실 신덕왕후는 역사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비운의 인물입니다.

조선을 개국한 당시의 왕비가 신덕왕후였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겠지요.  실제로 그녀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도 합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첫째 방석이 나중에 세자로 책봉이 됩니다.  하지만 태조의 첫째 부인에서 태어난 호랑이 같은 장성한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다는게 문제였죠.  그 중에서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가장 권력욕이 강했는데,  그에게 신덕왕후는 계모이자 자신의 욕망을 가로막는 정적이었습니다.

불행은 신덕왕후가 나이 마흔에 요절을 한데서 시작됩니다.  신덕왕후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이성계는 이로 인해 실의에 빠졌고,  이방원은 그 틈을 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아들들을 모두 죽입니다.  나중에 이성계 마저 죽자 이방원은 정동 부근에 있던 신덕왕후의 묘를 이곳 북악산 북쪽 자락으로 옮기게 합니다.

청계천에 있던 광교가 무너지자 신덕왕후 릉에 있던 정자각 석물들을 광교의 보수에 사용하게 해 온 백성이 그를 밝고 지나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왕후에서 후궁으로 강등시킨 것도 당연한 것이었구요.  이방원이 신덕왕후를 얼마나 미워했는지는 여러가지 일화들이 전해 옵니다만...   참 남자가 옹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을 나무라는 걸 신덕왕후가 나서서 여러번 무마시켰다는 기록도 있다는 걸 보면 말이지요.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죠.


이런 내용들이 정릉의 안내문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그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야 뭐 주로 역사 드라마를 통해 남아있는 기억들이지만요.   이때가 재미있었는지 요즘도 아들이 가끔씩 조선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합니다.

정릉 숲 산책 

북악산 자락에 묻혀있어 세간에 잊혀질 뻔한 정릉이지만 정릉 주위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산책로가 잘 조성되면서 다시금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지명으로서의 정릉은 귀에 익숙하지만 서울 살이 30년만에 처음 와 봤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길입니다.  가을 낙엽이 쌓여 더욱 운치가 있죠.


길을 들어서는 초입에 이런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생수나 하나 살겸해서 올라가 보았는데, 이 가게도 역사가 오래된 것이더군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음료수 같은 걸 팔고 계시더군요.  선정릉에도 예전에 이런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면서 철거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직 남아 있네요.  그런데 나름 이곳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 할머니 거동하실 때까지는 놔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늘진 북쪽 자락이라 그런지 단풍이 제법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주로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많더군요.


전체적인 코스입니다.  저희는 정문으로 들어와 정릉 앞으로 해서 A지점을 지나 소방문쪽의 길게 둘러가는 길을 통해 B지점으로 내려서는 원점 회귀 코스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걸으면 대략 2.5Km로 한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지도에서 보듯이 북악 스카이웨이와 맞닿아 있으며 약간의 오르막이 있습니다만 그리 험하지 않아 어린 아이들도 즐길 수 있습니다.



북사면이라 그늘이 져서 약간 쌀쌀합니다.  가을에는 조금 챙겨 입는게 좋을 것 같은데, 좀 걷다보면 땀이 나서 다 벗게 됩니다.  조용하고 아늑한 풍광의 길이 좋습니다.


A지점을 지나 북쪽 능선부로 올라섭니다.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응봉산 산책으로 단련된 아들에게 이 정도는 껌이죠.


능선부 쉼터에서 물을 마시며 잠깐 쉽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립니다.  나무들이 키가 높아서 전망이 트여있지는 않습니다.  조용히 앉아 쉬면서 자연의 숨결을 느낍니다.


벚나무와 참나무 낙엽 사이에 노란색으로 바래져 가는 잎의 색대비가 너무 예뻐서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나무 뿌리가 뱀의 모양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어슴프레할 때 보면 정말 뱀인 줄 알겠습니다.  뿌리가 이렇게 드러나면 나무에 별로 좋지 않은데... 걱정이네요.


능선부를 돌아 다시 내려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절경이 있는 길은 아니지만 조용히 사색하면서 걷기에는 딱 좋은 길 같습니다.  신덕왕후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구요.


정릉 한 켠에는 무너진 재실을 복원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네요.   복원이 완료되면 한번 와 봐야 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약현성당에서 삼청동을 거쳐 정릉을 도는 도심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코스를 돌아 보았습니다.


아이도 마나님도 모두 흡족해하는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즉흥적으로 결정된 여행이었지만 대박을 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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