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삼나무 필통 만들기 - 이쑤시개의 재발견

지난 겨울 대전에 사는 조카가 오랫만에 저희집에 놀러왔습니다.

제가 목공을 취미로 하는 건 이제 온 식구가 다 알게 되었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조카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스케쥴이 바빠서 방학이라도 2~3일 이상 놀지는 못한다네요. 학원 스케쥴이 꽉 차있어서 ㅡ,,ㅡ 어른들보다 더 바쁜 초등학생들입니다.

나무를 주문해서 받아다가 만들 시간은 없기에 집에 있는 자투리 나무를 죽 나열해 놓고 뭘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전에 아들내미를 위해 만들었던 ABC박스가 삼나무 패널로 만든것인데, 제가 나무를 사는 아이베란다에서는 삼나무에 대해서는 폭에 따른 가격은 차이를 두지만 길이는 무조건 1200mm로 파는 정책이더군요. 아마 삼나무는 가격이 저렴해서 굳이 분할 판매를 할 필요가 없나 봅니다.

그래서 집에 ABC박스를 만들고 남은 삼나무 패널들이 꽤 남아있었습니다. 모두 12t였고 폭이 55mm와 90mm 인 것들이 있더군요. 이런것들로 만들수 있는거라고는 필통 밖에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안그래도 공부에 치는 아이인데 필통을 선물한다는게 내키지는 앉았지만 남은 목재가 그것뿐이라...

부랴부랴 스케치업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전에 만든 ABC박스는 그냥 목공본드로 맞대기이음(Butt Joint)를 했기 때문에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진화해서 연귀이음(Miter Joint)를 해보자고 생각해서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지우개와 연필을 구분할 수 있는 칸막이를 홈을 파서 넣기로 했습니다. 칸막이는 자작합판 3.5t 자투리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치수는 아래를 참조하십시요. 연필등을 수납하기에 딱 좋은 크기입니다.


근데 첫 작업부터 좌절이었습니다. 연귀이음을 위해서 45도로 잘라야 하는데 플라스틱 각도톱대를 너무 믿었나 봅니다. 신나게 자르고보니 아래 사진처럼 삐뚤빼뚤... 이건 뭐...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바로 깨닫고 설계를 수정합니다. 그냥 맞대기이음으로 갑니다. 부랴부랴 치수를 조정해서 다시 자릅니다.


각도톱대로 직각을 자르는건 신경써서 자르면 어느정도 정확하더군요. 만원짜리 싸구려지만 없는것 보다는 나은것 같습니다.


잘라진 부재들을 놓고 가조립을 해봅니다. 딱딱 맞게 재단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요...


3.5t 자작합판 쫄대를 끼우기 위해 홈을 파야 하는데 세밀하게 이어붙여 톱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트리머가 있다면 좀 수월했을라나요? 모양은 좀 없지만 어쨌든 딱맞게 홈가공이 되었습니다. 이때 줄이 있었다면 좀더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을텐데요... 이때는 저런 작은 홈을 가공할 줄이 저에게 없었습니다.


삼나무는 가공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무르고 잘 튿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피스를 박아도 헛도는 경우도 많고 해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삼나무는 끼워맞추어 본드로 결합하는 방법으로 서랍재를 많이 만드나 봅니다. 이때 저는 도웰링을 좀 해본터라 이번에도 도웰링 즉 목심작업으로 연결해 보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6mm 목심을 호기롭게 박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도웰링을 위해 사용했던 지그인 도웰마스터를 어설프게 알고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측판을 결합하려고 보니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더라는... ㅡ,,ㅡ 홈을 파놓아서 뒤집지도 못하고, 여유분의 자투리는 없고... 할 수 없이 박았던 목심을 목심제거톱으로 잘라내고 원래대로 맞대기이음으로 갑니다. 쉽게 말해 본딩 후 클램핑 전략이죠.

아래 사진과 같이 집에 있는 모든 클램프를 동원하여 클램핑을 하는데 조그만 필통 클램핑을 위해 600mm 퀵클램프를 이용하는 등 문제가 좀 많았죠. 닭잡는데 소잡는 연장쓰는 격이죠. 이때 F 클램프가 있었다면 쉬운 문제였는데...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목공용 본드가 미끄럽기 때문에 나무와 나무를 본드로 결합하고 클램핑하다보면 미끄러져 틀어지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위 사진처럼 무려 250kg의 힘이 가해지는 퀵클램프를 써서 클램핑을 하다보니 부재들이 밀려서 아래 사진처럼 툭 튀어나오게 된 겁니다. 좌절이었습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조카는 대전으로 내려가버렸고, 조카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이 필통은 애물단지로 베란다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실패로 깨닫게 된 것은 절대 급한 마음으로 목공을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최악의 경우 안전사고이고 잘 되봐야 이런식의 질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거죠. 그리고 도웰마스터도 제대로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관련글에 있는 도웰마스터에 대한 상세글이 나오게 된 겁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큰 힘이 가해지는 퀵클램프는 이런 소품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F형 클램프를 추가로 구입했고 핸드스크류도 만들어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품에는 약한 힘을 가하는 클램프가 좋다는 단순한 이치입니다.

며칠뒤 베란다에서 뒹굴고 있는 실패작 필통을 보고 있자니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피스를 박기도 그렇고, 6mm 목심을 박기도 그렇고, 그냥 본드를 바르자니 미끄러져 클램핑이 힘들다면 아주 가는 목심을 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주 가는 목심은... 이쑤시개면 되겠다! 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집에 있는 이쑤시개의 직경을 재어보니 편차는 있지만 대략 2.5mm 정도더군요. 제가 2.5~3로 넓어지는 테이퍼 드릴비트를 쓰고 있으므로 직경도 딱 맞고, 이쑤시개의 포장을 보니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작나무는 아주 단단한 나무죠. 단지 가늘어서 잘 부러지는 것이지요.

일단 힘을 가해서 툭 튀어나온 측판 양쪽을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밑판을 줄과 끌로 갈아서 깍아냈습니다. 이 작업이 사실 시간이 좀 걸리고 지루하더군요. ㅡ,,ㅡ 그리고 다시 측판을 붙이는데 이때 이쑤시개를 이용합니다.


작업방법은 단순합니다. 먼저 부재를 잘 클램핑하여 두고 3mm 드릴비트로 부재를 관통하는 구멍을 냅니다. 그리고 살짝 부재를 빼내어서 접합면에 본드를 바릅니다. 다시 부재를 결합한 뒤 본드를 바른 이쑤시개를 구멍으로 쑥 밀어넣습니다. 그리고 마를때까지 기다립니다. 굳이 클램핑을 할 필요도 없고 하더라도 약하게 하면 됩니다. 이쑤시개가 부재를 잡고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고 정확한 위치에 고정이 됩니다.

본드가 마른뒤에는 목심제거톱이나 칼 등을 이용하여 이쑤시개의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면 됩니다. 그러면 아래 사진처럼 조그만 점처럼 이쑤시개 자국이 보이지만 8mm나 되는 목심처럼 거슬리는 정도는 아닙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이쑤시개 목심이라는 아이디어는 이후 자작나무합판 시계받침을 만들때도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시계받침의 경우 각도가 있는 결합이라 클램핑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이쑤시개 목심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집에 나뒹구는 하찮은 이쑤시개도 때로는 목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나중에는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산적꼬치도 다이소에서 사다가 해봤는데 괜찮습니다. 이쑤시개보다 낭비가 적습니다. 왜냐하면 이쑤시개는 뾰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잘라내야 하거든요.

비록 조카에게 선물하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삼나무 필통이 완성되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부분을 수정하고 사포질로 마무리를 하니 뭐 봐줄만 하더군요. 역시 사포질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삼나무는 색이 어둡고 흐린편이라 미적인 면에서 좀 떨어지는 편인데 그래서 마감이 꼭 필요한 나무같습니다. 별다른 마감재료가 없어서 집에 있던 내츄럴 오일 폴리쉬를 발라주었더니 아래 사진처럼 갈색이 좀 먹어서 훨씬 더 보기 좋네요. 삼나무에는 오일 마감이 나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필통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아들내미의 잡동사니 보관함으로 더 많이 쓰이네요. 리모콘 보관대로도 쓰이고요. 저런 형태의 수납박스가 손닿는데에 하나쯤 있으면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초보시절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필통 제작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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