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들이 부쩍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도 제법 여물어지고 표현도 다양하게 하고 어떤 때는 반항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참 어렵다는 건 저와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가 없는 아들에게 저는 형과 같은 또래 역할도 해주고 싶고, 더 없이 인자하고 든든한 아버지 역할도 해 주고 싶습니다.
여전히 바쁘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말 만은 아이와 함께 걷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아이와 함께 걷기"라는 카테고리도 만든 거였구요. 올해도 꽃이 피기 시작하고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아이와 함께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걸으면서 세상에는 스마트폰이나 TV보다 더 재밌는게 많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싶지만 공통으로 나눌 주제가 없다면 대화가 어렵지요. 걸으면서 나무와 꽃을 보고, 맛나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아이와 함께 걷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멀리 근사한 곳으로 갈 필요 없습니다. 가까운 서울 도심에도 멋진 걷기 코스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접근이 쉬우면서도 안전한 서울 성곽길을 소개 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서울 성곽을 4개의 코스로 나누어 걷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코스는 장충체육관 -> 남산 구간이고, 다음으로 동대문 -> 혜화문 구간입니다. 나머지 두 구간은 북악산 구간과 인왕산 구간인데 어른에게는 힘든 길이 아니지만 아이가 6살 이하라면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장충체육관 -> 남산 구간에 대해 어린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코스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구간은 아들이 다섯살일 때도 무난히 걸었던 곳이었고, 일곱살이 된 올해도 별 어려움 없이 소화했던 코스입니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전기버스를 타는 경험까지 할 수 있고 남산 N타워도 볼 수 있으니 아이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얼마전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씨가 함께 걸어서 뉴스에 나온 길이기도 하지요.
2014년 4월 6일 일요일, 아들과 마눌님이 함께 한 걷기 여행 기록입니다. 전반적인 코스는 장충체육관에서 국립중앙극장까지는 성곽길 안쪽으로 걷고, 국립중앙극장 앞에서 남산순환버스를 타고 남산을 올라서서 N타워까지 짧은 구간을 걸어가는 코스입니다. 남산을 오르는 것은 어른도 꽤나 벅차기 때문에 어린 아이가 있다면 남산구간은 버스를 타는게 좋습니다.
장충체육관 -> 국립중앙극장
아들이 요즘 지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깔아서 한번 보여준 Google Earth 프로그램을 아들이 수시로 열어서 세상 탐험을 하곤 합니다. 집 앞 응봉산을 가면 남산 N타워가 빤히 보이는데, 거길 다녀온 뒤 Google Earth를 띄워서는 저에게 N타워를 보여주더군요. Google Earth에는 사용자가 만든 3D 모델을 위치와 결합시켜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N타워도 누군가 모델링해서 붙여 놓았더군요.
그러면서 아들이... N타워에 가보고 싶답니다. 그래서 옳다구나 싶어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갔었던 (그러나 아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ㅡ,,ㅡ) 성곽길 장충동 구간을 가기로 했습니다.
걷기 여행을 할 때는 승용차를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다행히 집 앞에서 출발 지역인 장충체육관까지 가는 버스가 있더군요. 버스 정류장에서 일요일이라 배차시간이 뜸해진 버스를 기다리며 마눌님과 아들이 "쌀밥 보리밥"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쌀밥을 할지 보리밥을 할지는 예비 동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
장충체육관 인근에 도착하면 두가지 선택사항이 있습니다. 파파존스를 끼고 오른쪽 비탈길로 올라가면 성곽 안쪽길로 가게 되고 파파존스를 지나서 좀 더 큰길로 올라가 성벽이 보이는 곳에서 작은길로 들어서면 성곽 바깥쪽 길로 가게 됩니다. 바깥쪽 길로 가다가 안쪽 길로 갈 수 있는 암문은 한참을 올라가야 있습니다.
저는 성곽 안쪽 길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바깥쪽 길은 오래된 주택가라 운치가 있지만 나무와 정원이 잘 가꾸어진 신라호텔 쪽 길이 고도가 높고 풍경이 더 좋습니다.
위 사진에서 빨간 화살표 길로 조금만 올라서면 이런 지도가 보입니다. 아이와 함께 갈 때는 지도를 지나치지 말고 꼭 같이 보세요. 현재 위치가 어디고 우리가 어디까지 갈거라는 얘기를 같이 나누어야 아이도 목표가 생기고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이에게 현위치를 보여주고 반얀트리를 지나 국립중앙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남산을 올라갈 것이라고 지도를 짚어주며 설명을 해 줍니다.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장충체육관에서 국립중앙극장 앞까지는 1.6Km 구간으로 천천히 걸어도 한시간이면 됩니다.
성곽 안쪽 길은 이런 풍경입니다. 왼쪽에 성벽을 끼고 마치 초병인 것 처럼 성 바깥쪽을 내다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길은 대부분 데크로 되어 있고 일부 흙길 구간과 시멘트 포장 구간이 섞여 있어 안전합니다.
성곽 안쪽 길은 신라호텔의 정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잘 꾸며진 정원을 보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지요. 화살을 쏘는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이런 조각품들이 여러개 놓여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 길은 신라호텔에서 서울시에 빌려주어 확보된 길이라 통행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략 일몰시간에서 일출시간 전까지는 보안상의 이유로 이구간의 성곽 안쪽길을 통행하지 못합니다.
길을 가면서 왜 이런 성곽을 짓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중간 중간 성곽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있으므로 같이 읽어보면 됩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성곽 너머 아래쪽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키가 작아 돌벽밖에 보질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지루해 할 수 있습니다. 성벽에 난 이런 구멍이나 홈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밖을 내다 볼 시간을 꼭 주세요. 이 코스는 한 여름에 와도 괜찮은데, 전체적으로 그늘이 진 데다가 돌로 된 성벽은 만지면 차가운 느낌이 있고 이 네모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천연 에어컨이 따로 없습니다.
성밖과 안을 드나드는 문 중에서 망루가 없는 문을 "암문"이라고 합니다. 망루가 있는 문들은 숭례문, 혜화문 등으로 이름도 있고 멋진 기와도 있지요. 이런 큰 문 외에도 중간 중간 암문이 있어서 성 안팎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도 중간에 암문이 있어서 성바깥으로 혹은 성 안쪽으로 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운동시설이 좀 있는데 요즘 이 운동기구에 빠진 아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요. 모든 운동기구를 한번씩 다 해보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이 구간은 길 폭이 넓고 평탄해서 아이들이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뛰어서 탈입니다. 뛰다가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줬는데도 천방지축 뛰어 다닙니다. 양쪽으로 담장이 있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겠네요.
제비꽃은 왠만해서는 군락을 이루지 않는데 이 코스 중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제비꽃 군락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꽃이라도 빠뜨리지 말고 아이와 함께 이름을 같이 불러주고 꽃의 아름다움도 감상하세요.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면 반얀트리의 골프연습장과 테니스장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전망대가 있습니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이 좋습니다.
반얀트리를 끼고 돌면서 숲길은 끝이 납니다. 이후로는 반얀트리 호텔 내 길을 지나서 국립중앙극장 앞으로 내려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코스의 전반부가 끝이 납니다.
국립중앙극장 -> 남산 N타워
국립중앙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남산으로 올라갈 것인가, 걸어서 올라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남산 오르기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어른들만 간다면 꼭 걸어서 올라가라고 권하고 싶네요. 의외로 풍경이 아주 좋습니다.
국립중앙극장 앞에는 남산순환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소가 있습니다. 남산순환버스 2번, 3번, 5번 등의 세가지 노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어느 버스를 타도 남산 N타워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저는 아들에게 이 곳에서 전기버스를 탈 수 있다고 미리 공언을 해 놓았습니다.
하필 오늘이 날씨 좋은 봄날 일요일이라 엄청난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남산순환버스는 전기버스도 있고 천연가스버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값이면 전기버스를 타야 아이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우리 차례에 전기버스가 오기를 아이와 함께 간절히 바랬는데... 다행히 전기버스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콩나물 시루같이 너무 버스에 사람이 많더라는거...
전기버스에서 내려서 전기버스 충전대를 보여주면서 왜 전기버스가 생겼는지 어떻게 충전하는지 등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봤습니다. 한국인들도 많았지만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꽤나 많더군요.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N타워까지는 가파른 경사로를 제법 올라야 합니다. 그나마 주변에 멋진 나무들이 있어서 힘든 걸 좀 잊을 수 있습니다.
N타워에 도착했습니다만... N타워도 인산인해입니다. N타워의 명물인 카라멜 팝콘을 하나 사서 나눠 먹습니다. 어디 앉을 자리가 없어서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먹습니다. 그래도 땀을 흘리고 나서인지 맛있네요.
한숨 돌리고 나서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보니 사랑의 자물쇠를 묶는 곳에 줄이 좍 서있더군요. 뭔일인가 싶어 저희도 줄을 서서 올라갔지요. 늘 보던 자물쇠들이었습니다만...
이 표지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드라마 "별을 사랑한 그대"에서 도민준과 천송이가 이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걸요. 마침 중국에 별그대 붐이 불고 있었고... 그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보려고 남산에 올랐던 겁니다. 아마도 이 광풍이 좀 지나면 여유롭게 남산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남산 N타워에서 휴식을 좀 하고 전망도 즐기다가 내려 왔습니다. 내려올 때도 남산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노선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집에 돌아와서 씻고 나니 아이가 엎드려서 그림을 한 장 그립니다. 뭔 그림인가 봤더니 오늘 가서 보았던 N타워를 그렸네요. 잘 그렸나요?
짧은 구간이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경치도 좋고 안전하고 쉬워서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걷기 여행 코스로 적극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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