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5년 5월 1일 금요일

한성 백제 박물관에서 백제를 만나다

좁디 좁은 한반도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긴 만큼, 역사의 흔적도 많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조선의 수도였고, 더 멀리 가면 백제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의 송파구 풍납동에 해당되는 풍납토성이 백제의 옛 수도였습니다.

5월 초에 아들 학교에서 봄 방학을 한다고 하네요.  저도 휴가를 내어 아들과 함께 역사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차 멀미를 하는 아들 덕에 멀리는 못가고,  가까운 동선을 잡다 보니 충청도와 전라북도를 유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제의 역사를 훑게 되더군요.

그래서 아들과 도서관에서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충청도의 백제 유적지에 대해 알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몽촌토성이 있는 올림픽공원에 "한성 백제 박물관"이 새로 개장한 것이 기억나서 무척이나 더웠던 지난 주말 아들과 함께 그곳을 다녀 왔습니다.

역시 날씨 좋은 봄의 주말은 공원마다 인산인해입니다.  올림픽공원 주변도 주차할 공간을 찾는 차들로 북새통이었는데,  올림픽공원 주변 한바퀴를 돌고 나서야 역시 "동2문"이 주차하기가 가장 좋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한성 백제 박물관은 남2문과 남3문 사이에 있지만, 그 주차장들은 늘 가장 먼저 만차가 되는 주차장입니다.

한성 백제 박물관은 전에 올림픽공원 9경 스탬프 투어를 할 때 그 존재를 알았습니다.  언제 한번 다시 와봐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이가 있으니 찾게 되는군요.  이 박물관은 2012년에 지어진 시립 박물관입니다.  최근에 지어진 만큼 시설도 좋고 전시물도 훌륭합니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널직한 공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른 박물관은 많은 전시물을 배치하려는 욕심으로 공간을 비좁게 쓰는데 비해서 이 곳은 공간의 여유가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토성의 실제 모형은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바닥에 있는 큰 지도를 통해 현재의 위치와 백제의 도읍지였던 풍납토성과 올림픽공원에 있는 몽촌토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좋아하는 아들이어서 한동안 여기저기 짚어보며 감상합니다.


이 재현한 작업자들의 모습에서 토성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통나무로 기둥을 세운 뒤,  판재로 틀을 짜고,  거기에 진흙을 채워 넣은 뒤,  무거운 통나무로 퉁퉁 내리쳐서 다집니다.  이렇게 사각형의 큰 진흙 덩이를 쌓아 토성의 골격을 만든 다음,  이 위를 흙으로 덮어 마무리 합니다.   이렇게 시공을 하니 흙이 무너지지 않고 높이 쌓을 수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지어진 토성을 "판축토성"이라고 하며,  쉬이 무너지지 않는 특성으로 현재까지도 그 형태가 남아 있다는 겁니다.  무려 2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말이죠.


토성 모형 한켠에는 풍납토성을 발견했을 당시의 에피소드와 발굴 모습에 대한 흥미로운 비디오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풍납토성 지역은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사이 한강변에 접한 항아리 모양의 땅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었고, 1990년대 아파트 건설붐이 일 때 이곳도 재건축이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곳이 백제 위례성이라 주장해온 이형구 교수가 이 재건축 현장에 몰래 침투해서,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정부에 보고하니, 당연히 이 지역의 공사는 중단되고 대규모의 발굴 작업이 시작됩니다. 

물론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재산권 침해니 하면서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발굴된 백제 유물의 질과 양이 엄청난 데다가,  규모마저 엄청나서 백제의 옛수도인 "위례성"이 이 풍납토성 지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해마다 예산을 투입해서 주민들의 땅을 매입해 발굴 작업을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아파트들이 몰려 있어서, 아마도 제 생각에 이 아파트들이 낡아서 허물게 될 때나 완벽한 발굴이 이루어질 걸로 보입니다.  

이 영상을 보다 보면 로비에 있던 토성 모형이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실제 토성 지역을 절개한 후에 이 곳이 판축토성임을 알게 되었고,  여러번의 증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토성 절개면을 얇게 떠내어서 이곳 박물관에 그대로 붙여 놓은 것이라고 하는군요.  이 설명을 들으니 토성 모형을 다시 보게 됩니다. 


전시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합니다.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백제 박물관에서 이런 전시물은 좀 뜬금 없긴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창을 던져야 사슴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아들이 좋아하는 "정글의 법칙"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정글의 법칙에서 처럼 뭐하나 먹을려면 저렇게 고생해야 했다면서요.  그러니 쉬이 밥 먹는다고 소중한 줄 모르면 안된다고 얘기해 줍니다.


조금 시대가 지나면 농사를 짓고 집단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원시적인 종교가 생깁니다.


이 청동 "팔주령"은 화순 대곡리에서 발견된 유명한 것입니다.  저 방울 안에 콩을 넣어서 소리를 나게 하였다고 추측됩니다.  종교 행사에서 제사장이 사용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됩니다.


한켠에는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을 게임으로 만든게 있네요.  큰 돌을 나무 위에 올리고 당기는 겁니다.  부실한 우리 아들 등수에나 들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4위로 올려주네요.  아마도 등외는 모두 4위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안했으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울었을까요? ^^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는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중 온조가 위례성에 자리를 잡은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층은 같은 가문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왜 그렇게 싸웠을까요?  백제와 고구려는 서로의 왕이 죽으면서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했습니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설명하기 좋은 그림입니다.  1980년대 몽촌토성이 발굴되었을 때 모두들 이 몽촌토성이 위례성이라 생각했다 합니다.  하지만 1997년 재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풍납토성의 유적과 집터 등을 볼 때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가 된 것 같습니다.  실제 몽촌토성에 비해 풍납토성이 규모도 더 크고,  궁궐로 추정되는 큰 집터도 있고, 훨씬 더 많은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온조왕이 이곳에 성을 쌓아 500년 동안 이곳이 백제의 수도였다는 것이죠.  이후 백제 개로왕 시절, 고구려 장수왕이 침입하여 개로왕이 죽고 백제는 이후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풍납토성 지역은 한강과 가깝고 저지대여서 홍수에 매우 취약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990년대에만 해도 풍납동 지역은 상습 침수지역 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풍납토성이 위례성이 아닐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 많은 유적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도 홍수의 위험으로 토성도 더 높고 견고하게 쌓았던 것 같습니다.  수차례 증축도 하구요.


풍납토성과 달리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으로 조성된 가운데에 있어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박물관을 둘러본 후 가까이에 있는 몽촌토성 둘레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무덤 양식도 얘기거리가 많습니다.  백제의 초기 무덤은 고구려 양식과 비슷한 돌무지무덤(적석총)이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층은 같은 가문이니까요.  현재의 석촌동 일대에 이런 돌무지무덤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5기만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보려면 석촌동 고분군에 가면 되는데,  이 날은 아이가 피곤해 하여 생략했습니다.


백제 후기로 가면 이런 돌방무덤 형태로 바뀝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덤들이 거의 다 이런 형식이지요.  이런 방안에 많은 유물들이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거의 다 도굴되어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드디어 "칠지도"입니다.  칠지도는 한성 백제 박물관의 로고이기도 한 대표적인 백제의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칠지도는 우리나라에 없고 일본에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국보입니다.   칠지도에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가 성스러운 소리를 내었으므로 일부러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그러니까 백제의 근초고왕이 왕세자가 태어난 기념으로 일본의 왕에게 하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백제가 일본의 왕에게 상납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어쨌던가 백제가 만든 건 틀림없는데 일본에 주었다니 일본의 소유이긴 하네요.  


한성 백제 박물관에는 최근에 지어진 박물관 답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플레이 스토어에서 "한성백제박물관"으로 검색하면 관련 앱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지점마다의 컨텐츠를 또 다운로드 받아야 합니다.  제 폰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이긴 하지만 3G라 많이 느립니다.  컨텐츠 하나 받는데 10분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ㅡ,.ㅡ

아들은 안달을 해대고 해서,  애써 기다려 칠지도 관련 컨텐츠를 다운 받았습니다.  앱을 실행시키고 칠지도를 화면에 담으면 아래와 같이 칠지도와 관련된 얘기가 나옵니다.  뭐 이렇게 보면 재밌는 것 같지만, 그다지 몰입감도 없고...  어른의 시선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서 제가 들어서 비추면 잘 작동하는데, 아이의 높이에서 화면을 비추면 제대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이건 좀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아이들이 흥미로워하긴 하네요.


백제는 해상 강국이었습니다.  중국 동해안 지방, 그리고 일본 남부지방에서 백제의 흔적을 아직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배를 타고 동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행사 했겠지요.



이 배에도 증강현실 프로그램이 있어 실행시켜 보는 아들입니다.  다운 하나 받는데 몇 분이 걸리는데도 참 집요합니다. ^^



당시의 동아시아 외교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양직공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양직공도는 중국 양나라 원제에게 조공을 바치러 온 외국의 사신들을 그리고 그 나라의 풍속을 간략히 적은 그림으로 중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중국이 당시 어떤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왜, 페르시아, 말레이 등의 사신들 그림이 있는데, 절반이 유실되어 고구려, 신라 그림은 없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은 백제의 사신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양직공도"를 보고 일본 사학자들이 멘붕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당신 일본의 국력이 대단했다고 주장했었는데,  여기에 그려진 왜국의 사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옷차림도 남루하고 심지어 맨발로 나옵니다. ^^  그에 비하면 백제의 의상은 럭셔리 그 자체입니다.


일본의 국보 제1호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아래 왼쪽 사진의 교토 고류지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입니다.  그런데 이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우리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았습니다. (오른쪽 사진)  금동 반가사유상은 지금도 백제의 것인지 신라의 것인지 모호한데,  일본의 반가사유상이 우리에게서 전해진 것 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번은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의 조각이 일부 부러진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조각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놀랍게도 한반도의 적송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땅에서 만들어진 것을 가져간 것이거나, 우리의 장인이 적송을 가져다가 일본에서 만든 것일 겁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500년 동안 위례성에 자리 잡았던 백제는 장수왕의 남침(?)으로 웅진(공주)으로 밀려납니다.  당시 백제왕이었던 개로왕은 강 건너 아차산성 아래서 죽습니다.  전사라는 얘기도 있고,  고구려군이 위례성을 점령한 뒤 개로왕을 잡아다 아차산에 있던 장수왕에게 끌고 와 참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가 지금의 남한과 북한처럼 참으로 많이 싸웠던 것 같습니다.


아차산은 아들과 함께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를 보고 무척 좋아하네요.  그런데 지도에서 보니 아차산이 풍납토성(위례성)의 바로 강 건너입니다.  이걸 보면 장수왕이 남하했을 때 아차산에 진을 치고 위례성을 공략했으리라는 강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차산에는 고구려 군이 진을 쳤던 보루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 한성 백제 박물관과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아차산 보루, 고구려 대장간 등을 엮어 답사하면 아이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 코스의 마지막에는 이런 퀴즈 키오스크가 있습니다.  문제가 상당히 어려워서 전시물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맞추기 어렵더군요.  우리 가족은 하나 틀렸습니다. ^^   이런 구성도 좋은 것 같습니다.  시험치는 것 같지만, 이렇게 피드백을 해주면 아이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구경을 할 것 같습니다.


박물관 로비 한켠에는 5월말까지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토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 되었다는데,  아파트 공사할 때 얼마나 많은 유적들이 중장비에 의해 찢겨 나갔을지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이 조각들은 다 어떻게 맞추었을까요?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입니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의외로 볼 것이 많아서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다리가 아플 정도네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볼만하지만,  이런 작지만 유적의 의미와 역사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도 좋네요.  박물관의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공원에 왔으면 평양냉면 매니아인 우리 가족이 꼭 가는 곳이 있죠.  봉피양에서 냉면 한사발 했습니다.  봉피양은 여러번 먹어보지만 우래옥과 참 비슷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쪽 고기 육수 계열보다는 의정부, 장충동, 논현동에 있는 평양면옥 스타일이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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