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자신이 만든 가구에 혹은 도마에 올리브유를 발라도 되느냐, 포도씨유를 발라도 되느냐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보통 건성유(dry oil)를 바르는 것이 좋다. 비건성유는 마르지 않고 산패되어 좋지 않다는 식으로 대답해 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찜찜한 것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건성유는 불포화지방산이기 때문에 산소와 반응합니다. 하지만 불건성유는 포화지방산이기 때문에 산소와 반응하지 않습니다. 산소와 반응하지도 않는 불건성유가 산패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의문이 든거죠.
산패(rancidity)의 정의를 Wikipedia에서 찾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수분해(hydrolysis) 혹은 산화(autoxidation)를 통해 긴 사슬구조의 지방이 짧은 사슬의 알데히드(aldehyde)나 케톤(ketone)으로 변질되는 현상. 이로 인해 특유의 냄새(혹은 악취, 쩔은내)가 발생하고 맛도 변질된다.
그런데 위의 설명은 식용으로서의 식물성 오일을 볼 때의 입장입니다. 우리는 식물성 오일을 목재의 마감용으로 사용합니다.
목재 마감에서 식물성 오일이 오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이 대부분 식용으로서의 식물성 오일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식용이라면 산패된 오일은 못쓰는 겁니다. 하지만 목재 마감용이라면 산패->경화(rancid->curing)이기 때문에 원하던 것입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 입장에 따라 두가지 해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검증해 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모든 종류의 식물성 오일을 실제로 건조시켜 보는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험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알아 보겠습니다.
실험 진행
저희 집 부엌에는 참으로 다양한 식물성 오일이 있더군요. 대충 꺼내본 것이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왼쪽부터 포도씨유, 들기름, 참기름, 올리브유,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코코넛오일,미네랄오일, 월넛오일입니다.
이 중에서 들기름, 월넛오일은 건성유 범주에 들고, 포도씨유는 반건성유 범주에 들어갑니다. 나머지는 비건성유들입니다.
이들 오일들을 샬레에 조금씩 덜어 놓고, 각각에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그리곤 볕 좋은 베란다에 두었습니다.
매일 상태를 관찰하였는데, 예측한 대로 들기름이 가장 먼저 굳기 시작하여 3일째에는 거의 고체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월넛오일 그리고 포도씨유 순으로 굳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세 (반)건성유들은 고약한 혹은 특유의 냄새가 났습니다. 반면 나머지 비건성유들은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들기름은 특유의 불쾌한 쩐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반면 월넛오일과 포도씨유는 견딜만한 정도였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모두 관찰을 해 보았습니다. 건성유들은 쭈글쭈글해지면서 모두 고체가 되었습니다. 들기름이 가장 단단하게 굳었고, 다음으로 월넛오일이 제법 단단히 굳었습니다. 반면 반건성유인 포도씨유는 굳긴 굳었는데 부드러웠습니다. 손을 대면 쩍쩍하고 붙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비건성유들은 전혀 마르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증발되어 양이 좀 줄었지만 남은 오일은 여전히 손으로 문지르면 액체 상태입니다. 그리고 냄새는 별로 없습니다. 아래 해바라기씨유 사진처럼요.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앞서 산패의 정의에서 보았듯이 건성유는 불포화지방산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식물성 오일은 긴 사슬모양의 분자구조 인데, 불포화지방산은 산소와 반응하면 긴 사슬이 끊어지며 조각이 납니다. 이것들의 일부가 바로 케톤과 알데하이드들입니다.
조각난 구조들의 대부분은 서로 교차결합(cross-linking) 하면서 고체가 되지만, 일부는 기체로 발산됩니다. 케톤과 알데히드는 냄새가 고약하기로 유명한 애들입니다. 건성유가 경화되면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들기름, 월넛오일, 린시드오일, 텅오일 모두 경화되면서 냄새가 납니다.
사실 냄새가 많이 난다는 건 반응이 활발하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더 빠르고 단단하게 굳는다는 뜻입니다. 밀폐된 공간에 오일 마감한 가구를 두면 아마 그 냄새에 질식할 정도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구 마감에 건성유를 쓰는 이유는 건성유가 나무의 섬유질에 침투한 다음 거기서 굳기 때문입니다. 강한 도막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섬유질의 빈 공간을 촘촘히 메꾸면서 굳으니 가구의 표면의 물성이 좋아지는 겁니다.
만일 비건성유를 가구에 바른다면 상당히 오랫동안 손에 오일이 묻어날 겁니다. 이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얘기한 이 메카니즘은 바로 식물성 오일의 산패 현상입니다. 불포화지방산이 산소와 반응하여 냄새가 나고 굳어진다는 건 식용으로는 안 좋은 결과입니다. 식용으로 볼 때 산패는 나쁘지만, 마감재로 볼 때 산패는 가구 표면을 아름답게 하고 물성을 좋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냄새는 다 빼야겠지요.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들기름은 건강에 좋다하여 집에 다 있을 겁니다. 주부들은 들기름을 밀봉하여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산패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불포화지방이 산패되는 조건은 빛(자외선), 산소, 높은 온도입니다. 그러니 밀봉에 냉장보관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스테인과 폴리우레탄 실험
비슷한 방법으로 집에 있던 오래된 수성 투명 스테인과 수성 폴리우레탄도 실험해 보았습니다. 오일에 비해서 좀 넉넉하게 부었습니다.
이들 둘은 하루가 지나니 완전히 굳었더군요. 역시 전용의 마감재들은 다릅니다. 아래 사진은 수성 투명 스테인이 굳은 겁니다. 스테인은 바인더(binder)와 안료(pigment)로 구성됩니다. 투명 스테인은 바인더만 있는 제품입니다. 이 바인더가 바로 수지(resin)입니다. 투명도가 높은 걸 보니 아마도 아크릴 수지로 보입니다. 이것을 통해 스테인에도 제법 많은 수지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투명 스테인을 바른 나무의 표면이 쫀쫀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겠죠.
아래 사진은 수성 폴리우레탄입니다. 다소 탁한 우윳빛으로 굳어서 좀 놀랐습니다. 수성 폴리우레탄은 우레탄 수지를 계면활성제(글리콜에테르)가 녹여 미셀(micelle) 상태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윳빛인데, 얇게 펴 바르면 물이 증발하면서 미셀이 깨지고 우레탄이 굳습니다. 그런데 두껍게 발랐을 때 윗 표면이 먼저 말라버리면 속의 미셀이 깨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우윳빛으로 굳는 겁니다.
수성 폴리우레탄을 얇게 발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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