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엄마들의 고난이 시작됩니다. 더운 여름날 어디 나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심심한 아이는 엄마를 못살게 굴고, 에어컨 틀어대면 전기세만 나오고, 짜증난 엄마와 아이는 서로 삐지고...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이 둘을 달래느라 진을 뺍니다.

이럴 때는 어디라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왠만한 유명한 곳은 초등학생들이 점령하고 있어 힘들고, 등잔 밑 어두운 곳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딱 맞는 곳이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여러곳이 있습니다. 덕수궁 근처의 서소문본관, 중계동에 있는 북서울미술관, 사당동에 있는 남서울생활미술관, 경희궁 앞의 경희궁분관, 마지막으로 노을공원 인근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이 글은 소멸된 태풍 탓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8월 2일 토요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다녀온 얘기입니다. 마침 이곳은 세개의 무료 전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작동 라이브러리>, 그리고 <은밀하게 위대하게> 전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작동 라이브러리>와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8월 3일 전시가 끝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8월 10일에 전시를 마칠 예정이니 보시려면 서두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전시는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언제든 편안하게 와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서소문본관에 가려면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2호선 시청역 10번출구로 나가는 것이 미술관에 가장 가깝습니다만, 2호선 12번 출구나 1호선 1번 출구로 나가서 덕수궁 옆의 덕수궁 돌담길로 둘러가길 권합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곳이라 유명한 길이지요. 운치있는 길이 미술관 가는 길 답습니다.


저희는 비도 추적추적 오고, 문닫기 한시간 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왔기에 승용차를 가져왔습니다. 미술관에 안에 주차장이 있습니다만 협소하기 때문에 차를 가져올 경우 바로 옆의 빌딩 지하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미술관의 외관은 이렇게 고풍스럽습니다. 비까지 오니 분위기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미술관 내부는 3층까지 뻥 뚫려있어서 시원한 느낌입니다. 먼저 1층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전으로 갑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전은 한국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에 대한 작품이 많더군요.


전시관 내부는 이렇게 널찍합니다.


전통적인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미술작품은 아이들이 재미 붙이기는 좀 어렵지요. 그래서 빛과 그림자, 컴퓨터 그래픽, 움직이는 기계장치 등을 활용한 설치예술들이 아이들에게는 더 접근하기 좋습니다. 이곳은 어지러이 빛이 회전하는 방인데, 여러가지 조각품들이 빛에 의해 변하는 모양이 재밌습니다. 저 새부리 마스크는 전염병을 치료하던 중세 의사들이 착용한 것이라고 하네요.


전시관 입구쪽에는 이렇게 큰 통나무가 시소모양으로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많은 동전들이 못으로 박혀있습니다. 작품 안내를 보니 동전을 못으로 나무에 박고 나서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네요. 아쉽게도 못이 없어서 직접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돌탑처럼 많은 사람들의 행위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구슬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살짝 밀면 굴러갈지 궁금하네요.


우리나라 집의 지붕을 테마로 여러 작품을 그린 작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가는 어떤 점이 끌려서 이런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습니다.


미술관 카페에서 잠시 휴식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서 미술관 1층에 있는 카페로 갑니다. 카페 가는 길의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미술관 카페답게 다양한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더군요. 가격은 좀 비쌉니다. 아들이 초코머핀 하나를 뚝딱 해치웁니다.


카페 천장에 태양계 모빌이 달려 있더군요. 아들이 빤히 쳐다보며 갖고 싶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아마존에서 같은 걸 파는데 가격이 좀 비싸네요. 나중에 선물로 사줄 생각입니다.


<오작동 라이브러리>와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제 2층에 있는 <오작동 라이브러리>와 <은밀하게 위대하게>전으로 갑니다.


<오작동 라이브러리>전은 30~40대 작가들이 수많은 정보와 지식에의 접근은 용이하지만 올바른 선택이 어려워진 "지식정보사회"에 주목한 작품들을 모은 곳이라고 하네요. 이곳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얇은 젖유리에 프로젝트로 비추니 아주 인상적인 스크린이 만들어지는 군요. 요거 응용하면 재밌겠습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필름에 대한 작품입니다. 필름 더미들이 쌓여있는데 가져다가 불빛에 비쳐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처음 보는 걸 겁니다.


어지러이 부서져있는 조형물에 낙서같은 만화들이 쌓여있는 작품입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전은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에서 방영한 "아티스타 코리아"의 최종 도전자 3인의 작품을 전시한 곳이라네요. 저는 한번도 보지 못한 프로라 좀 생소했습니다만 전시관 벽을 노랑과 검정 스트라이프로 장식에 그 강렬함이 대단했습니다.


크지 않은 전시관인데 저 쇠막대가 빙빙 돌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어 아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서둘러 나옵니다.


전시관 바깥 풍경

이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예술적입니다. 구조도 특이하고 구석구석 재밌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1cm 간격으로 실이 매달려있는데 아닌 곳을 찾아보라는데...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걸어가니 어지럽습니다. 아마도 이걸 노린 장난스런 작품 같습니다.


이런 색의 소파는 본 적이 없습니다. 과감한 색상과 패턴인데 의외로 잘 어울리고 재밌습니다. 저 소파에 앉으니 유리로 된 천정이 빤히 보이는데, 마침 비가 내리니 운치가 있습니다. 제가 총각시절 효자동에서 자취할 때의 집이 저렇게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도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천장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이렇게 긴 계단이 이어지니 이색적이네요.


이번에는 황금색 소파입니다. 침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넓은데 한숨 누워자도 되겠습니다.


2층에서 보니 아까 카페 벽에서 본 것과는 다른 그림이 보이네요.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케하는 작품이네요.


1시간 30분의 짧은 감상이고 아이가 징징대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제가 미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현대 미술 전시회를 오면 그 창의성에 대해서 매번 놀라곤 합니다. 예술로서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마를 탁 칠만한 창의와 혁신이 담긴 작품들을 보면 참 즐겁습니다. 아이도 이런 재미를 느낄 날이 오겠지요?

을밀대 냉면을 맛보다

저희 식구는 평양냉면 매니아입니다. 다행히 집이 서울 중심부와 가깝다보니 서울 중심부에 몰려있는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들... 우래옥, 을지면옥, 필동면옥, 봉피양, 평가옥, 평양면옥 등을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못가본 집이 바로 <을밀대>입니다. 을밀대는 마포구 염리동에 있어 이상하게 잘 가지질 않더군요.

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 왔으니 여기서 을밀대까지는 불과 2~3km 정도여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게는 여러 평양냉면 집 중에서도 가장 허름한 편입니다. 그리 크지도 않구요. 그래도 다행히 줄을 서지는 않았습니다만 가게 안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냉면을 드시고 계시더군요.


녹두빈대떡과 물냉면 둘을 시켰습니다. 녹두빈대떡이 먼저 나왔는데 오~ 이거 예술입니다. 청진동 먹자골목에서 먹어 본 제대로 된 빈대떡을 여기서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맛이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냉면은 다른 집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더군요. 육수가 짭쪼롬합니다. 마나님 의견은 쇠고기로만 육수를 내는 것 같다고 하네요. 물 대신 육수를 주전자에 내어 주는데 그 육수를 그대로 식힌 거라고 하네요. 다른 냉면집들은 동치미 육수를 하거나 소와 돼지 혹은 닭고기 까지 섞어서 국물을 내거나 아니면 이 둘을 섞는데, 여기는 쇠고기 육수로만 하는 듯 합니다.

저는 평양냉면에 겨자를 넣지 않는데, 여기 냉면은 겨자를 약간 섞어야 풍미가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오는 주말, 집에서 뒹굴거리는 아들과 마나님을 데리고 미술관 관람을 하고 평양냉면을 먹고 왔습니다. 한결 하루가 알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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