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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4일 수요일

떠나온 집에 대한 추억

제 디카 메모리에 엄청나게 쌓여있는 사진들로 인해 카메라가 느려져서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메모리를 노트북에 끼워넣고 버릴 건 버리고 남길건 남기자며 정리를 하는 중에 발견된 사진들 덕분에 한동안 또 상념에 잠겼습니다.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 살던 같은 단지내의 26평 아파트에서 이사 나오던 날의 사진들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IMF로 불리는 경제환란 시기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왜 이리 경제가 어려울때 결혼하느냐고 걱정했지만 사실 결혼하는 입장에서는 IMF가 참으로 좋은 기회였습니다. 연봉은 삭감되고 보너스는 안나와서 호주머니가 홀쭉해졌지만 반면에 집값, 자동차값 등의 모든 물가가 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비싼 전세값과 집값 때문에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당시에 강서구 등촌동의 17평 신축 아파트 전세를 4천만원에 구해서 신혼집을 차렸습니다. 지금 그 아파트의 전세 시세를 알아보니 1억 3천에서 1억 4천 정도이니 무려 3배나 오른 것이지요. 당시 저와 마눌님이 저축한 것에다가 천만원 정도의 대출을 받아서 결혼비용과 전세금, 혼수 등을 다 마련했습니다.

거기서 2년을 살다가 회사와 가까운 송파구 삼전동의 20평대 빌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송파구라는 비싼 동네였지만 대략 6천만원 정도의 전세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한 2년 살다가 송파구 가락동의 20평대 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갔습니다. 비록 우리집은 아니었지만 이때 살았던 20평대 아파트는 저희에게는 대궐같이 넓은 집이었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부친의 빚보증 문제 때문에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하는 수 없이 집을 줄여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가락동 시영아파트 13평 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전세금을 줄여서 빚의 일부를 갚고 해마다 천만원씩 갚아야 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시영아파트는 당시에도 지은지 25년이 된 오래된 아파트라 외풍도 심하고 시설도 엉망이었습니다. 정말 우울했죠.


하지만 와신상담이랄까요? 그런 누추한 집에서 살다보니 씀씀이도 줄고 마음도 다잡게 되더군요. 그렇게 그곳에서 3년을 살던 동안 꽤나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10년만에 다시 찾아온 경기불황으로 집값이 주춤할 때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집을 사게 됩니다. 그때가 2006년 1월입니다.

비록 복도식에다가 유난히 좁은 26평형 아파트였지만 처음으로 산 집이라 애착이 많은 집이었죠. 천만원 정도를 들여서 인테리어도 싹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우리에겐 아이가 없었죠.


근데 이 아파트 유난히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농으로 다산 아파트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여기로 이사온지 2년이 채 안되어 우리에게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이때가 2008년 8월인데 이 즈음에 이 동에서만 4~5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래서 모두 주민등록 뒷번호가 일련번호입니다. 울 아들내미가 태어나서 다섯살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을 줄 알고 이 아파트에 계속 살려고 했습니다만 아이가 생겼으니 집을 넓혀갈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작년 (2012년) 겨울에 같은 아파트 단지 다른 동의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하여 이사한 것입니다.

이사하는 날 짐을 다 빼고 나니 안방 벽에 제가 아이의 키를 잰 것이 보이더군요. 2011년 한해에만 무려 100mm 가량 자랐네요. 미국 영화에서 아이가 자라는 키를 나무 기둥에 표시하는 것을 보고 따라해 본것인데... 이걸 뜯어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 집에 이사 들어오는 이가 도배를 하지 않는다하여 그냥 사진으로만 남겼습니다. 지금은 키가 대략 107 cm 정도 됩니다.


짐을 다 비우고 아이에게 너가 태어난 집을 눈에 담으라고 얘기했습니다. 짐이 비워진 집이라 스산한 느낌입니다.


이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뒤집고 기어다니고 첫걸음을 떼었더랬습니다. 아이의 고향이죠.


아이도 이사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지 막판에는 울기 시작합니다. 이사 안가면 안되냐고 떼를 씁니다. 마눌님이 잘 달래어 줍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굴곡이 있기 마련입니다. 개구리가 도약을 하기 위해 움츠리듯이 한창 어려울 때는 곧 만사가 잘 풀리는 때가 다가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자만하지 않으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비록 긴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만 나름 굴곡이 많았기 때문에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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